기관들 엔씨소프트 '묻지마 띄우기'
수치 등 분석 미비한 장밋빛 전망 쏟아져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엔씨소프트 주가가 신작 게임 기대와 기관의 천편일률적인 칭찬일색으로 연일 사상 최고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은 계속 차익을 실현하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외국인의 매도세를 이기고 추가 상승을 이어갈 수 있을까.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엔씨소프트 주가는 전날 41만6000원에 마감했다. 이는 상장 이후 최고가다.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24만5500원이었던 주가가 올해 들어 무려 69.4% 급등했다. 오는 21일 출시를 앞둔 신작 모바일게임 리니지M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덕이다.
핵심 매수 주체는 기관이다. 기관은 지난 4월1일부터 전날까지 엔씨소프트 주식 1511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 기간 기관 순매수 순위 4위에 오를 정도로 매수세가 강했다. 특히 증권사와 운용사, 연기금 등이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도 연일 엔씨소프트를 띄우기에 바쁜 모습이다. 최근에 발간된 리포트를 보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린저씨(리니지+아저씨)를 믿어보자', '리니지M 빅히트 기대' 등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제목 투성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수치를 근거로 한 자세한 분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고서들을 보면 지난해 말 출시된 엔씨소프트의 첫 모바일게임인 '리니지 레드나이츠(RK)'가 100억원대의 개발비에도 왜 현재엔 구글플레이 등 게임순위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든지, 비슷한 시기에 엔씨의 리니지 지적재산권(IP)을 빌려 넷마블게임즈가 출시한 '리니지2 레볼루션'의 월매출이 지난해 12월 130억원 수준에서 올해 4월엔 약 40억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넘게 급감했는지 등에 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오히려 당시 이 게임들의 막연한 흥행 기대를 근거로 높여잡았던 목표주가는 아직 그대로이며 리니지M 출시를 앞두고도 비슷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전날엔 엔씨소프트 주가가 60만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보는 증권사도 등장했다.
이 같은 장밋빛 전망에 개인도 엔씨소프트 주식담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지난 4월1일부터 전날까지 개인은 엔씨소프트를 311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개인 순매수 4위 종목이 엔씨소프트다. 4월엔 468억원 순매수에 불과했으나 5월 들어 매수 규모가 대폭 커졌다.
문제는 과거 신작 출시를 앞두고 급등세를 탔던 게임사들의 주가가 게임 출시일에 맞춰 급락했던 사례가 빈번했다는 점이다. 최근 엔씨소프트와 드래곤플라이, 웹젠 등에서 이 같은 현상이 관측됐다. 일반 투자자들이 보통 신작 출시일을 고점으로 잡고 차익실현에 나서는 경우가 있으나 기관의 물량 털어내기가 더 심했다. 앞서 출시된 리니지RK와 리니지2 레볼루션의 경우도 기관은 출시전 '매수', 출시후 '매도' 패턴을 보였다.
더욱이 리니지 IP를 근간으로 개발된 게임들은 서로 실적 면에서 제로섬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리니지RK의 일정 매출을 리니지2 레볼루션이 가져왔듯 리니지M은 앞서 출시된 두 게임의 매출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내 모바일게임업체 한 임원은 "파이가 커지는게 아니라 기존 파이를 나눠먹는 구조"라며 "리니지M 사전예약 가입자가 많다고 유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그 숫자만큼의 유저가 빠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외국인 수급이 좋지 않다는 점도 주가에 불안 요인이다. 외국인은 지난 4월1일부터 전날까지 4645억원어치 엔씨소프트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는 순매도 1위 삼성전자 다음으로 가장 많은 규모다. 한국과 달리 외국인은 리니지M에 큰 기대감을 두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엔씨소프트가 차기 PC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야심작인 '리니지 이터널'의 1차 클로즈베타테스트(CBT)를 실시했을 때도 외국계 금융기관인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의 혹평으로 주가가 하루만에 9.93% 급락하기도 했다. 당시 크레디트 스위스는 게임성과 그래픽, 동기부여 부족 등을 지적했다. 보고서가 나온 다음날 외국인은 단 하루만에 엔씨 주식 9만주를 매도했다. 외국인은 전날 하루에도 엔씨소프트 주식 11만주를 팔아치웠다.
국내 일반 게임유저들 사이에서도 엔씨소프트의 게임운영 방식에 대해 큰 실망감을 보이는 경우가 적잖다. 출시한지 어느덧 18년이 됐고 엔씨소프트의 핵심 캐시카우 역할을 해오던 PC게임 '리니지'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면 '도박성을 내포한 무분별한 확률형 게임아이템 판매', '이 같은 아이템 판매에도 외국과 달리 고가의 월 정액요금을 요구하는 점', '불법 자동프로그램에 대한 미온적 대처' 등 유저들의 불만글로 넘쳐난다. 실제로 리니지 유저도 급감했다. 이 같은 하향세에 엔씨소프트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30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0% 급감했다. 엔씨소프트가 광고비를 대폭 늘려 대대적인 리니지M 마케팅을 벌이고 있으나 과거와 같은 운영방식을 답습한다면 실패할 것이라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리니지 큰손을 의미하는 '린저씨(리니지+아저씨)'가 과거처럼 많은 돈을 게임에 투자할지도 의문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게임 주 유저층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어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소비 구조의 특징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30대 60대 등 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의 소비 여력에서 월평균 실질소비지출은 지난 9년간 대폭 하락했다. 가계 실질소비지출은 2014년 4분기 이후 9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특히 지난해 4분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5.1% 감소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오늘 7월부터 게임업계에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강화해 실시하는 등 규제가 점점 두꺼워지는 추세인 점도 엔씨소프트엔 부정적이다. 이 제도는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을 조장하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에 게임사들이 자구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자율규제는 실효성이 없어 오히려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게 일고있다. 중국의 경우 법으로 규제해 강제성이 더 크다. 중국은 지난달 1일부터 중국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들의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이에 벌써부터 한국 유저들 사이에서는 "중국에서는 확률을 공개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비공개로 하느냐"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90.3%(936명)가 확률형 아이템 강제 규제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중국처럼 확률 공개를 법으로 강제하는 법안 3개가 발의된 상태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8년 된 콘텐츠가 젊은 유저층에 어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며 "주가가 리니지M 게임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게임 흥행의 불확실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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