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문재인 정부의 첫걸음이 상큼하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 대통령의 향후 5년 직무 수행 전망'에 대해 87%가 "잘할 것"이라 낙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새 정권의 신선한 행보가 크게 작용했다. 정파나 지역, 성별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능력 위주로 '인재'를 쓰는 용인(用人) 솜씨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검찰 개혁 조치나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조치에서 보듯 공약을 이행하려는 진지한 자세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니 문화계의 기대도 커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블랙리스트' 파문 등 박근혜 정부 때 문화계의 상처가 컸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문화예술의 장르별 구체적 주문이야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지만 새 정권에선 크게 세 가지 원칙이 지켜졌으면 한다.
우선,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자세가 절실하다. 사실 정권이 바뀌면 문화계에서도 인사든, 예산이든 쏠림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 현실이다. 그 와중에 호가호위하며 문화계의 '권력'으로 행세하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새 정부에선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말이 조장(助長)이다. 중국 송나라 때 어느 농부가 곡물이 빨리 자라도록 싹을 조금씩 뽑아 올렸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자라는(長) 걸 돕자고(助) 한 일이나 결국 뿌리가 들린 곡물은 말라 죽었단다. 여기서 원래 자라는 데 힘을 북돋워준다는 의미의 조장이 옳지 못한 일을 거든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자기 생각과 같다고, 자기를 따랐다고 더 퍼주고 더 챙겨주는 일은 자기 진영의 전횡을 조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역작용, 후유증을 남긴다. 부디 문화예술계의 자정 능력을 기대하고, 편 가르기를 그쳤으면 한다.
다음은 문화예술 정책의 잣대를 경제성에 두지 않기를 바란다. 인문학의 부흥이니 콘텐츠 산업 진흥이니 하며 지원하는 기준이 이제까지는 오로지 경제성이었다. 예산 지원을 하더라도, 관련 기구를 만들더라도 "영화 한 편 수출하는 것이 자동차 몇 만 대 수출하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접근하곤 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은 풍요로운 삶을 위한 방안이 아니다.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한 통로라고 믿는다. 그런 만큼 돈 되는 '예술'을 집중 지원할 게 아니라 약하고 흔들리지언정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분야에도 눈을 돌리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문화 분권(分權)을 지향했으면 한다. 권력을 나누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의 문화예술 육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분야도 대부분 그렇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문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지방에 사는 이들이 그럴 듯한 문화 혜택을 누리자면 대책 없이 기다리거나 서울로 걸음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온 국민이 질 높은 삶을 영위하자면, 그러기 위해 문화적 혜택을 지금보다 더 향유하자면 지방의 문화예술 지원에 더욱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다고 군(郡)마다 공연장을 짓고 시마다 교향악단을 키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접근은 가능하지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단지 지역문화 육성 요구를 배부른 이들의 '타령'이라 여기지 말고 지역 문화인, 지방 문화계를 도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런 세 가지 원칙만 견지한다면, 굳이 문화예술 분야까지 인적 청산을 서두르지 않더라도 새 정부 임기 내에 문화예술계의 건강성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가.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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