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모임' 없었다는 검찰, 차명폰 사용 추적 못해
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수첩은 재조사 중요 단서
문건 수사 당시 '최순실 관련 진술' 있다?·없다?
[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김효진 기자]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 1호 과제로 꼽은 '정윤회 문건' 재조사는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의혹과 핵심 증거가 주요 단서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 위민시스템 복합기 출력 서버'(청와대 서버)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도 열쇠 역할을 하게 된다. 청와대 내에서 작성ㆍ출력되는 모든 문서는 서버에 저장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를 임의로 지우거나 훼손하면 범법 행위로 처벌 받게 된다.
조국 민정수석은 여기서 나타난 의혹과 증거 등을 중심으로 당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실체 규명에 나선다. 그중에서도 '차명폰(대포폰)' '정윤회 문건 파문 당시 최순실 관련 검찰 진술이 있었는지 여부'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내용 등은 핵심 쟁점이 된다.
◆'십상시' 모임 있었나=2014년 11월28일 '정윤회의 국정 개입'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대상은 문건 내용 진위와 청와대 문건 유출 경위였다.
이 문건은 정윤회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정호성ㆍ이재만ㆍ안봉근 비서관)'과 행정관 등으로 구성된 일명 '십상시 모임'을 통해 국정에 개입하고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물러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이 주목한 대목은 '십상시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박관천 경정(당시)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에는 정씨가 2주에 한 번씩 서울에 와서 서울 강남 JS가든에서 십상시를 모아서 여러 얘기를 했다고 적혀 있었다.
검찰은 이들의 1년간 휴대폰 위치 추적 분석 결과 등을 바탕으로 십상시 회동은 실체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국정농단 수사 및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연루자들의 차명폰 사용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지난 1월 탄핵심판 증인신문에서 최순실과 차명폰으로 연락했음을 인정했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에게까지 차명폰을 쥐어줬다고 증언하면서 청와대 내 광범위한 차명폰 사용 실체가 드러났다.
특검팀 또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기면서 정 전 비서관 등이 여러 대의 차명폰을 사용한 사실을 수사기록에 적시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이들이 합법적인 전화기로 연락을 주고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따라서 검찰의 당시 수사는 실질에 접근하지 못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최순실 관련 진술 있었나=정윤회 문건은 총 8개의 버전이 존재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 전 경정의 진술에 검찰이 제대로 귀를 기울였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박 전 경정은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 등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라는 언급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언급에 구체적인 단서가 없어 수사 단초로 삼긴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박 전 경정은 정윤회 문건을 생산하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여러 형식으로 정씨와 최씨의 비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검찰 또한 이를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수사대상이었던 2쪽 분량의 소위 '정윤회 동향 문건' 중 최순실이 언급된 대목은 '정윤회(58세ㆍ고(故) 최태민 목사의 5녀 최순실의 부(夫)ㆍ1998년~2004년 VIP 보좌관)' '정윤회는 한때 부인 최순실과의 관계 악화로 별거했지만 최근 제3자의 시선을 의식, 동일 가옥에 거주하면서 '각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함'이라는 두 군데 기재가 전부이며 최순실의 구체적인 비리나 국정개입에 관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종일관 박 전 경정은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관련한 내용이 문건에 언급돼 있고, 검찰에도 최씨와 관련한 진술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내용도 민정수석실의 재조사에 중요 단서가 될 전망이다. 김 전 수석이 작성한 2014년 12월1일자 업무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수사 방향을 지시하는 내용이 드러나 있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의 뜻을 검찰총장에게 전달하고 속전속결, 투트랙으로 수사하라"고 했다. '수사의 템포(속도)와 범위, 순서가 모든 것'이라는 부분은 검찰 수사의 구체적인 속도와 범위, 순서 및 결과까지 예정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업무수첩에는 '박지만은 제외하라' '정윤회 및 문고리3인방에 대해서는 관련성이 있는 경우 제한적으로 수사하라'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민정수석실의 재조사 방침에 대해 자유한국당 등에서 수사지휘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는 오히려 박근혜정부가 개별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찰 수사를 지휘한 정황을 나타내고 있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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