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른들도 불러모으는 어린이영화...시대 달라져도 동심과의 만남은 여전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어린이는 영화의 오랜 주제이자 관객이다. 영화는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순수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오색찬란한 영상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가 하면, 평범하고 모범적인 쇼트만으로 가슴을 울린다. 어린이영화는 도덕적 메시지 등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맞닿아있다. 현실과 연관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깨워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뿌린다. 이미 굵은 줄기를 뻗은 어른에게는 순수했던 그 시절의 향수. 주인공의 성장을 지켜보며 한동안 잊었던 기억을 소환한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1948년)'은 자전거에 얽힌 추억을 부른다.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잃고 절도범이 되는 안토니오(람베르토 마지오라니). 절망적인 현실에서 그의 곁을 지키는 아들 부르노(엔조 스타이올라)는 유일한 희망이다. 사이먼 윈서 감독(74)의 '프리 윌리(1993년)'는 열두 살 제시(제이슨 제임스 리처)와 수족관 속 고래 윌리의 특수한 관계를 통해 순수한 우정을 그린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윌리에게 자유를 선물하는 제시에게서 근래 보기 드문 온정을 느낄 수 있다.
마지드 마지디 감독(58)의 '천국의 아이들(1997년)'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어린 남매를 조명한다. 낡아빠진 운동화 한 켤레를 바꿔 신으며 등교하면서도 해맑게 웃는 얼굴이 행복의 척도를 다시 세우게 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년)'도 어린이의 순수함을 비춘다. 원칙을 강요하고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교육 환경에서도 꺾이지 않는 고귀한 가치다.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55)의 '아무도 모른다(2004년)'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천진난만한 얼굴들을 통해 설파한다. 어머니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삶의 위대함이 전해진다.
성장에 주목한 어린이영화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새로운 공감대를 마련한다. 하지만 어린이날의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하기에는 다소 주제들이 무겁다. 흐뭇하고 기쁜 교감을 원한다면 시각적 스펙터클로 무장한 어드벤처영화가 제격이다. 화려한 영상에 익숙한 아이 앞에서 시계를 너무 거꾸로 돌리면 곤란하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을 활용해 실사로 제작한 1990년대 영화쯤은 돼야 한다. 아버지의 발명품에 아이들이 8mm로 줄어드는 조 존스톤 감독(67)의 '애들이 줄었어요(1989년)', 피터팬과 후크선장의 이야기를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71)의 '후크(1991년)', 게임판에서 조류 떼가 튀어나와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는 존스톤 감독의 '쥬만지(1995년)', 상상하는 대로 환상의 세계가 열리는 가버 추보 감독(65)의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2007년)' 등이다. 모두 어린이의 상상을 동력으로 삼아 화려한 영상을 선보인다.
이 세계는 2000년대 들어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일보했다. 할리우드가 앞을 다퉈 꿈의 영역이었던 판타지 소설들을 영화화하기 시작했다. 앤드류 아담슨 감독(51) 등이 연출한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작가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가 어린이를 위해 쓴 이야기로, 마법의 옷장을 통해 신비의 나라 나니아를 찾은 네 남매가 위대한 사자 아슬란과 함께 모험을 떠난다. 첫 작품인 '사자, 옷장, 그리고 마녀(2005년)'에서 네 남매는 순수한 마음을 앞세워 나니아를 구원한다. 특히 막내 루시 페벤시(조지 헨리)는 의심 없는 믿음으로 나니아로 가는 문을 열고, 아슬란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준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발견되는 아이들의 순수성은 여덟 편으로 전 세계에서 77억2000만달러(약 8조7400억원)를 벌어들인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발견된다. 영국의 작가 조앤 캐슬린 롤링(52)이 루이스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이야기로,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한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자신의 마법 능력에 눈을 뜨고 모험을 하는 판타지 어드벤처다. 이 영화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해리 포터의 투쟁과 내면적 성장, 고뇌 등에 무게를 둔다. 부모 없이 친척 집에서 학대당한 해리에게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안전한 도피처로 그려지는 듯하지만, 기득권층 부모를 둔 학생들과 일부 교수들 틈에서 괴로움이 증폭되고 만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엠마 왓슨), 론 위즐리(루퍼트 그린트) 등 친구들이 외로운 투쟁에 힘을 보태면서 화해와 이해의 세계를 열고 인간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네 남매가 전투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다.
복잡한 판타지세계에서 벗어나 동심에 빠지고 싶다면 애니메이션이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존 라세터 감독(60)이 연출한 '토이 스토리(1995년)'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을 법한 '우리 집 장난감들이 살아 움직인다면'이라는 가정을 기발하게 표현했다.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3D영상까지 과감히 도입해 새로운 입체감을 전한다. 라세터 감독은 1980년대부터 CG 기술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이 분야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신념이 너무 강해 디즈니에서 해고되기도 했으나, 토이 스토리는 물론 '몬스터 주식회사(2001년)', '카' 시리즈 등을 제작해 어린이는 물론 이들을 극장에 데려온 부모들까지 픽사의 팬으로 집어삼켰다.
디즈니는 2006년 그를 애니메이션 사업부의 수장으로 임명하고 '몬스터 대학교(2013년)', '비행기(2013년)', '라푼젤(2010년)', '업(2009년)', '월-E(2008년)' 등을 제작해 어린이들의 왕국으로 재도약했다. 이 목록에는 우리나라에서 1029만6101명을 동원한 '겨울왕국(2013년)'도 있다. 엘사와 안나 자매가 얼어버린 왕국의 저주를 풀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로, 여느 할리우드 실사 블록버스터 영화에 뒤지지 않는 스펙터클과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OST로 성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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