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후 70조원대 첫 붕괴
운용사 서로 따라만들기 붐
자금 끌어모은 뒤 관리 소홀
수수료율 높은데 수익률 낮아
고객들 손실안고 중도환매 고심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직장인 A씨는 은행 이자보다는 나을 것이란 기대로 몇년전 펀드에 가입했지만 요즘엔 아예 계좌를 잊고 지내려 애쓴다. 유명 펀드매니저가 직접 운용하는 펀드라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지만 펀드 수익률은 1년 넘게 마이너스인 탓이다. A씨는 손실을 감내하고서라도 중도 환매를 할지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한 때 재테크의 꽃이라 불렸던 펀드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높은 수수료에도 시장수익률을 웃도는 펀드가 드물어 신뢰를 잃은 탓이다. 전문가들은 운용사들이 '탈(脫) 펀드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베끼기식의 '붕어빵 펀드'가 아닌 뚜렷한 운용 철학을 기반으로 회사별 다양성이 반영된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외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69조1864억원이다. 지난달 21일 지지선 70조원대마저 붕괴됐다. 주식형펀드 설정액이 70조원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07년 7월 이후 처음이다. 펀드 붐이 일었던 2008년 말 140조원까지 불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 8년3개월만에 반토막났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아예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지난 1분기 동안 단 5거래일을 제외하고 57거래일동안 자금이 순유출됐다. 이 기간 빠져나간 돈은 약 2조9720억원이다. 코스피가 박스권 상단에 진입한 탓이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펀드 자체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잃어서다.
펀드에 대한 신뢰는 추상적인 것이 아닌 수익률 그 자체다. 최근 몇년간 업계에 날고 긴다는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액티브펀드는 단순 수동적으로 지수만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에 참패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수수료가 비싼 액티브펀드의 수익률(-3.7%)은 인덱스펀드(7.52%)와 코스피 상승률(3.32%)에 한참 못 미쳤다. 인덱스펀드 역시 상장지수펀드(ETF) 대비 수수료가 비싸고 환금성도 낮아 투자자들에 차별화된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펀드 수익률 붕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글로벌 불황과 국내 경기 침체, 증시 부진 등 구조적 문제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운용사들의 영혼없는 펀드 양산 행태를 지적했다. 유행을 좇아 우후죽순 펀드를 만들고 자금을 끌어모은 다음 관리는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최근엔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외국계 운용사가 만들어 성공시킨 펀드를 재간접펀드라는 명목으로 차용해 찍어내는 추세다.
국내 펀드매니저 1인당 평균 운용 펀드수는 7년째 6개다. 하지만 이는 '평균의 함정'으로 인력이 많은 국내 대형사마저도 1인당 보통 10여개가 넘는 펀드를 관리한다. 중소 외국계 운용사의 경우엔 1인당 최대 48개의 펀드를 담당하는 곳도 있다. 2015년부터 금융당국이 소규모펀드 정리 작업에 나서고 정리 기간도 올해 말까지로 1년 연장했지만 눈에 띄는 감소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공모펀드의 매력이 많이 희석된 것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수익률을 안겨주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는 운용사들의 귀책 사유"라며 "증시가 박스권에 있다 하더라도 다양한 투자전략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처럼 투자자들이 많이 빠져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 실장은 이어 "과거 롱숏펀드처럼 기존과는 다른 투자방식을 활용하거나 다양성을 갖춘 펀드들이 나와야 한다"며 "이를 통해 수익률을 끌어 올리면 투자자들은 펀드에 다시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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