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편의점·백화점 직원들 열악한 근무환경 노출…요통·어깨결림 70%·족저근막염 진단 32%달해…노동부 '사업주 의자 비치' 규칙은 단순 권고사항…직원들 "의자 있어도, CCTV·고객 앞에 어떻게…"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대형마트나 백화점 판매 직원, 식당 종업원 등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서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주, 상사 등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거나 폐쇄회로TV(CCTV)로 감시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 '고객은 왕'이라는 사회적인 인식 때문이다. 장기간 서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허리 통증 등 고통을 호소하는 근로자들도 늘고 있다. 또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오래 서서 일하는 등 열악한 업무 환경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24일 서울 중구와 종로구 일대 편의점 20곳을 돌아보니 계산원 모두가 서서 일했다. 이중 9곳에는 직원용 간이 의자가 비치돼 있었으나 앉아서 근무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물건 입고 확인 등 컴퓨터 작업을 위해 잠시 앉아서 근무하는 직원도 있었으나 손님이 들어오자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 앞에 섰다.
대형마트 계산대에도 직원용 의자가 놓여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손님을 앞에 두고 앉아서 계산 업무를 보는 직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시식코너 직원들도 서서 일하기는 매한가지다. 지난해 겨울 서울의 한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했던 A(24ㆍ여)씨는 "2시간 근무하고, 15분 정도 쉴 수 있었는데도 얼마 안돼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다"며 "'편하게' 서서 일하면 되는 줄 알고 시작했다가 혼쭐이 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근로자 12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8%(788명)가 요통이나 어깨 결림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았다. 32.4%(312명)는 족저근막염(발바닥 통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백화점은 서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집합체다. 26일 경기도의 한 백화점에 가보니 주차장 입구에서 마주친 주차요원부터 안내데스크 직원, 화장품, 구두, 정장, 스포츠의류, 가구, 가전 판매 직원 등이 모두 서서 일했다. 특히 고급 식료품이나 화장품, 구두, 정장 등을 판매하는 직원들은 여지없이 구두를 신고 일했다. 일반적으로 구두나 하이힐을 신고 오래 서 있으면 허리나 다리, 발 등에 가해지는 압박으로 인해 하지정맥류나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휘는 무지외반증 등 각종 질병에 노출 될 수 있다.
설날, 추석 등 명절 때 와인코너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 대학생 B(21ㆍ여)씨는 "바쁜 명절 때는 밥 먹는 시간 빼곤 앉아서 쉰 적이 거의 없다"며 "일할 때 굽이 낮은 구두를 신었는데도 발가락 마디마디가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로드숍 등 상점 종업원, 카페나 영화관 매표소 직원, 미용사 등 상당수 서비스직 근로자들이 서서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비스직 근로자들의 서서 일하는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에도 노동단체들이 서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앉을 권리를 주장하는 캠페인을 편 적이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고용노동부가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 사업주가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80조 의자의 비치)에 포함되기고 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 권고 조항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오래 서서 일하고, 불편한 자세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속 서 있는 자세'에 노출된 정도는 비정규직이 0.425(1에 가까울수록 노출 정도가 심함)로 정규직(0.346)보다 높았고, '피로하거나 통증을 주는 자세'에 노출된 정도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각각 0.306, 0.242를 보였다. 진동, 소음, 고온, 분진, 위험ㆍ감염 물질의 피부노출 등 고용형태별 위험 노출 정도에서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모든 부분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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