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의 '레알 문화코드'- 오락실 옆 노래방이었던 '오래방'이 동전노래방으로 독립한 까닭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경은 기자] 26일 찾은 신촌의 한 동전노래방엔 입구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아무리 흥이 많은 민족이라지만 노래를 부르기 위해 기다림을 감수하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줄을 선 사람들은 이내, 30개 안팎의 방으로 각각 흩어졌다.
오락실 한 켠에 자리한 동전노래방, 일명 ‘오래방’은 이제 어엿한 독점 ‘노래방’이 됐다. 건물 안에 동전노래방 기계를 여러 대 갖다 놓고 운영하는 식이다. 시설도 변했다. 1평 남짓한 방 안에는 쇼파로 된 의자, 에어컨, 탬버린까지 구비돼 있다. 최근엔 카드 결제 시스템까지 등장해 ‘동전’ 노래방의 혁신을 시도했다.
신촌에는 약 10개의 동전노래방이 운영되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가게들이 늘어서 있지만, 저녁시간대가 되면 신촌 일대의 동전 노래방엔 남는 자리가 없다. 주5일 출석 도장을 찍는 단골손님도 가게마다 한 명쯤은 보유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정문 근처 동전노래방엔 매일 학교 가기 전에 들르는 손님이 있고, 자취촌에 위치한 동전노래방엔 매일 밤 잠옷을 입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동전노래방 마니아라는 이승재(27) 씨는 “자주 가도 비용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말한다. 대부분 동전노래방의 비용은 2곡에 500원. 이 씨는 “동전노래방에만 한 달에 2만원을 쓴다”고 말한다. 2만원이면 일반 노래방 1회 이용 가격과 비슷하지만 동전노래방에서 총 80곡을 부르는 셈이다.
◆동전노래방, ‘혼놀족’이 재조명하다
동전노래방은 오락실과 찜질방 등에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인기는 이례적이다. 인기의 비결은 ‘1코노미’에 있다. 1인 경제를 뜻하는 신조어, 1코노미는 나 홀로 가구의 소비패턴을 보여준다.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먹기)에 이은 혼놀(혼자 놀기)이 동전노래방의 인기로 이어졌다.
실제로 신촌 일대 동전노래방을 찾는 이용객은 혼자인 경우가 많다. 신촌에서 동전노래방을 운영하는 A씨는 “처음 오는 사람, 매일 오는 사람 모두 혼자가 가장 많다”며 “주로 대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오는데 단골 중엔 할아버지도 계신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박태은(27) 씨는 주3회 동전노래방을 이용한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 지갑에 잔돈이 있으면 발걸음은 동전노래방으로 향한다. 박 씨는 “시간 제약이 없어 원하는 만큼 부르면 되고 주인과 마주칠 일이 없다는 점이 좋다”며 “혼자 놀기에 이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원조는 죽지 않는다
동전노래방이 호황이라고 해서 일반노래방이 불황인 것은 아니다. 동전노래방과 일반노래방은 상생하고 있다. 이용 목적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 노래방의 주 매출원은 단체 이용객이다. 피크타임 역시 보통 오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로, 코인노래방이 저녁시간에 붐비는 것과 차이가 있다.
신촌에서 4년째 노래방을 운영 중인 B씨는 “동전 노래방으로 인한 매출 타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B씨가 처음부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년 전, 동전노래방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려가 컸다. B씨 주위엔 노래방 사업을 접거나 동전노래방으로 영업형태를 바꾼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 노래방의 수요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B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은 떼창(단체로 따라부르기)하고 다같이 어울려 노는 것”이라며 “단체로 노는 사람들, 차 끊겼을 때 시간 때우려는 사람들이 동전 노래방에 갈 리는 없다”고 말했다.
동전 노래방의 인기 역시 계속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동전 노래방의 인기는 혼자 노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증거”라며 “1인 가구가 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동전노래방은 앞으로도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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