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지난 6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계열사들의 혐의가 줄줄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자금 76억2800만원, 삼성화재의 자금 54억원, 삼성생명의 자금 55억원 등 합계 220억 2800만원. 삼성 계열사들이 미르재단, 케이스포츠 재단에 출연금 명목으로 각각 지급한 돈이었다. 이중 삼성생명ㆍ화재 등 금융사들이 건낸 돈이 절반에 달했다. 삼성이 수백억원의 돈을 줬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려졌지만 계열사별로 얼마나 부담했는 지는 처음 드러난 것이다.
그 순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낸 돈이 왜 많았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삼성전자 매출ㆍ이익 규모에 비해 크게 낮은 금융계열사들이 절반 가까이 부담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은 곧 풀렸다. 특검은 이 부회장 측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청탁하기 위해 계열사로 부터 돈을 받아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삼성 측은 곧바로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물론 이같은 혐의는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9일 부터 시작된 공판에서 특검의 주장처럼 대가성 뇌물이든, 이 부회장 측의 주장 처럼 강요에 의한 어쩔수 없는 제공이든, 재판 과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될 일이다.
문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109억원을 최순실씨 측에 줬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목적이 지주회사 전환에 있든, 돈을 건낸 것은 사실이다. 두 회사는 제조업체와 다르게 고객들로 부터 받은 보험료를 여러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 보험료가 수익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씨 측에 건네준 109억원은 고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보험료로 볼 수 있다. 이는 보험회사의 최대 경쟁력인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다. 금융위원회가 삼성금융지주회사 전환을 반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현금을 금융 지주사로 이전해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면 계약자들의 권익이 침해된다고 봤다.
특히 계약자의 보험료를 이용해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난 여론은 미지급 자살보험금 문제가 겹치면서 더욱 거세졌다. 삼성생명이 1740억원에 달하는 미지급 자살보험금중 일부만 주겠다고 버티면서 여론으로 부터 뭇매를 맞았다.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 재단에는 그렇게 쉽게 돈을 줘놓고 정작 보험 소비자들에게는 줘야할 돈은 아끼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삼성생명은 거센 여론에 밀린 금융당국의 중징계 방침에 백기를 들며 전액 지급으로 돌아섰다.
삼성생명의 뒤늦은 전액지급 결정에 고객들은 적지 않은 실망감을 보이고 있다. 미지급 자살보험금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고객의 소리 보다는 정부의 입김을 더 무서워하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대통령 탄핵에 나서 그를 물러나게 했듯이 고객들도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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