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이승진 수습기자, 이설 수습기자, 문채석 수습기자, 전경진 수습기자, 정준영 수습기자]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하루도 채 남지 않은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과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은 극과 극이었다. 탄핵 찬성 촛불세력의 성지가 된 광화문광장 일대는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시민 혁명'의 과실을 조용히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반면 헌재 앞은 탄핵 반대 시민들이 기자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하는 등 분노가 난무했다.
이날 오후 3시쯤 헌재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안국역 4번 출구로 나오자 마자 '전우' 등 귀에 익은 군가 소리가 가득한 채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수많은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태극기 깃봉으로 촛불 폭도들을 때려죽여야 한다"는 극언이 사회자의 입에서 나오자 참가자들은 큰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사회자는 "태극기 혁명을 통해 광주(항쟁)을 폭동으로 만들 것이다", "때려잡자 촛불 폭동", "단두대가 아니라 말랑말랑한 태극기 봉으로 한 놈 당 5천만대씩 때려 천천히 죽여야 한다."이라는 등 망언을 계속했다. 참가자들 속에선 항의는커녕 "죽이자"와 같은 극렬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기자들에게 쏟아졌다. 정광용 박사모 회장 겸 탄기국 대변인이 참가자들에게 "절대 기자들을 때리지 마라"고 공개적으로 당부했지만 일부 참가자들은 아랑곳없이 기자들에게 공공연히 욕설을 퍼부었다. 취재에 나선 본지 기자에게도 한 참가자가 다가와 "기자 새끼들 똑바로 안하면 가만히 안 두겠다"며 위협했다.
무대 앞에 깔개를 깔고 앉아 집회를 지켜보면 한 여성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집회가 순간 중단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일당' 받으러 나온 것이 아니라 소신을 갖고 참가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홍교(68ㆍ남)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평일임에도 나왔다"며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나라를 좌파로부터 지키기 위해 계속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수자(74ㆍ여) 전 KBS 아나운서는 "언론인 출신으로서 요즘 언론행태에 크게 실망했다"며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주최측이 요구하는 대로 하겠다"고 전했다.
집회 도중 실제 청중들 사이로 탄기국 모금함이 지나가기도 했다. 김모(62?여)씨는 "자꾸 우리가 돈을 받고 나온다고 하는데 그래서 난 여기 오면 2, 3만원이 넣고 간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모(70)씨는 "언론에서 편파적으로 보도하니까 태극기집회 안 나온 사람은 이 열기를 모른다. 나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무대 쪽과 다소 거리가 먼 곳에선 분위기가 달랐다. 그저 멀뚱멀뚱 서서 무대쪽 사람들이 하는 양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리지어 담배를 피는 축들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외국인 네 명이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성조기를 든 것에 못마땅해하는 이들 때문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 할아버지가 성조기를 든 이들을 향해 "아니 태극기를 들면 들었지 성조기는 왜 들고 있는 거냐"며 역정을 냈다. 이날 참가자들은 "애국보수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아왔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같은 시각, 세월호 천막 농성장을 베이스 캠프 삼아 '촛불 시민 혁명'의 성지가 광화문광장 일대는 차분하기 그지 없었다. 포근한 바람이 부는 광장엔 인적이 드물었다. 산책 중이던 시민 강성권(67)씨는 텐트 농성장에 붙어 있던 '청와대 총사퇴'는 사회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반대한다면서도 헌재의 탄핵 인용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우리 같은 서민은 억울해할 것"이라며 "법의 잣대로도 국정농단한 사람을 처벌하지 못한다면 허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7시부터 개최될 촛불 집회 준비도 한창이었다. 촛불 집회를 주도해 온 박근혜정권퇴진국민행동 관계자는 "오늘은 평일이지만 사람이 꽉 찰 거라 생각하고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탄핵국면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간절하다"고 말했다.
북측광장에서 광화문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장동신(39)씨는 박 대통령 탄핵 여부에 상관없이 '세월호 7시간' 검증 작업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가족 후원 모임인 4ㆍ16연대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장씨는 "작년까지 광화문은 바람 쐬러 오는 곳이었는데, 요즘엔 분위기가 조금 스산해진 것 같다. 천막도, 현수막도 그때보다 늘어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안동에 사는 정점생(72)씨도 "텐트촌에서 머무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얼른 나라가 다시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북구에서 왔다는 이요섭(22)씨는 집회가 3시간 전부터 나와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손엔 '탄행 인용'이라 적힌 빨간색 피켓이 들려 있었다. 그는 "내일 집회는 탄핵 인용 축하 집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00일 넘게 이곳 광화문 광장에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살아온 정덕수 시인에게도 이날은 남달랐다. 그는 "누군가는 무슨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서 천막 농성을 진행 중인데, 내일 탄핵 인용이 되도 '부역자'들이 모두 처벌받을 때까지 계속 농성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혈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해방 전에 태어나 4.19혁명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모(74)씨는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모두 가봤는데 다행히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내일은 사람들이 흥분할 수가 있어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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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수습기자 labr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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