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약달러 놓고 균형정책 깨질 가능성…경제전문가 부족해 전략적 어려움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벽 3시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상대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마이클 플린. 트럼프가 플린에게 질문을 한다. "달러 강세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약세가 도움이 될까요?" 당황한 플린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한다. "트럼프, 그것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 잘 모릅니다."
이는 미국 허핑턴포스트가 8일(현지시간)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이다. 트럼프가 왜 거시경제 전문가가 아닌 안보 수장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에 제대로 된 경제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후보, 윌버 로스 상무장관 후보는 아직 의회 인준도 받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백악관이나 국가안보실 모두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월스리트저널(WSJ)·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은 이같은 에피소드가 강달러와 약달러 정책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트럼프 행정부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통화정책의 역사는 언제나 기축통화로서의 강달러와 경기회복을 위한 약달러 사이의 줄다기리였다. 미국이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달러가 국제결제 통화로서의 위상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균형정책이 힘을 발휘한 결과다.
강한 통화는 강한 경제, 강한 국력의 증거다. 그러나 지나친 통화 강세는 고비 때마다 미국 경제에 독이 된다. 달러 강세는 미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해외 매출이 많은 기업들은 본국으로 가져오는 수익이 줄어 손해다. 원유 등 달러화로 표시되는 원자재들에게도 강달러는 좋지 않다.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과거 미국 대통령들은 달러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왔다. 기껏해야 "강달러는 미국을 위한 것"과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했다. 달러화에 대한 언급을 통해 외환정책을 미세조정하려는 시도가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외환정책의 흐름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바뀔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달러화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물론 타국 통화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가 봉착한 딜레마다. 트럼프가 약속한 감세·인프라투자·재정확대·보호무역 등은 필연적으로 달러 강세를 초래한다. 인플레가 살아나고 경기가 회복될 경우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은 높아진다. 고금리는 강달러를 초래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해외 자금의 미국 복귀 역시 달러 가치를 들어올린다.
이 지점에서 트럼프의 고민이 시작된다. 무역적자를 줄이고 고용을 늘리고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해도 달러가 뛰면 경제 살리기 효과가 크게 줄어든다.
당선 전 연방준비제도(Fed)의 저금리와 약달러를 비판하던 트럼프가 최근 들어 강달러 경계 발언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깨달음'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중국·일본·독일 등과 환율전쟁을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상대국들의 도움이 없이는 달러 강세 흐름을 꺾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바람직한' 달러 가치에 대한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미국과 세계 경제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켓워치는 "국가 수장은 민감한 환율정책에 대한 미세발언으로 리스크를 키우는 일을 중단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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