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과징금 손본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하루 최대 53만7500원만 부과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은 과연 적절한 것인가. 삼성서울병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업무정지 15일에 해당되는 과징금으로 약 806만원을 부과받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케케묵은' 법조항이 비현실적이어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의료법령에서 규정된 이후 14년 동안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어서다. 법령은 하루 과징금을 최소 7만5000원~최고 53만7500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연간 총수입 90억 원이 넘는 병원의 상한선이 최고 금액에 해당한다. 이로 인해 연 매출 90억 원이 넘는 병원의 경우 매출이 100억 원이든, 1조 원 이든 상관없이 상한선인 53만7500원만 내면 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병원의 매출액 실태조사를 통해 상반기에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늦어도 하반기에 관련 법 개정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국회에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과징금 조항을 두고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관련 법 개정은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병원의 매출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될 것으로 보인다.
◆매출액 기준으로 현실화한다=복지부는 현재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개정안의 큰 흐름은 '병원 매출액에 따라 업무정지 1일에 해당할 만큼의 과징금으로 한다'는 데 있다. 정윤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14년 전에 만들어진 법조항으로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시인하면서 "매출액 실태조사를 통해 과징금이 병원에 따라 업무정지에 해당할 만큼의 효과가 있도록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개정 작업의 주요 목표로 '실효성 있는 과징금'을 들었다. 정 과장은 "매출액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때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볼 것"이라며 "이를 통해 산출근거를 마련하고 업무정지에 갈음할 수 있는 과징금 조항이 되도록 개정작업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정 과장은 "올해 안에 개정한다는 타임테이블을 갖고 시작할 것"이라며 "의료법과 시행령을 동시에 개정해야 하는 만큼 각계의 의견 또한 중요한데 소통의 창구도 열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도 "이대로 안 된다" 가세=삼성서울병원에 대한 806만원 과징금이 부과되자 국회에서도 문제점을 앞다퉈 지적하고 나섰다. 연 수입 90억원이 넘는 의료기관의 경우 과징금액이 1일 평균 수입액의 2%(53만7500원)에 불과한 반면, 연 수입이 5000만원에 불과한 의료기관의 과징금액은 1일 평균수입의 45%(7만5000원)에 이르는 비현실적 구조라는 데 입을 모았다.
여기에 약국은 또 다른 기준을 적용받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약국은 매출액이 많은 기관일수록 과징금률이 높았다.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현실을 지적하면서 매출액에 따른 정률부과방식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약국에 적용되는 약사법상 과징금제도는 의료기관과 마찬가지로 매출액이 많을수록 1일당 과징금액도 많도록 설계됐다. 전년도 총매출 금액(3000만 원~2억8500만 원)에 따라 업무정지 1일당 최소 3만원에서 최대 57만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
연간 총수입이 3000만원인 A약국의 1일 평균 수입액(300일 기준)은 10만원이다. 이 약국의 1일당 과징금은 3만원으로 1일 수입액의 30%를 차지한다. 연간 총수입이 2억8500만원인 B약국의 1일 평균 수입액(300일 기준)은 95만원이다. 이 기관의 1일당 과징금은 57만원으로 1일 수입액의 60%를 차지한다.
정 의원은 "최근 복지부가 2015년 메르스 확산의 책임을 물어 삼성서울병원에 업무정지 15일에 갈음하는 과징금 806만원을 부과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며 "그 정도의 과징금이 진정으로 업무정지 15일치를 갈음할 수 있다고 보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소하 의원(정의당)도 현재의 의료기관 과징금 조항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른바 14번째 '슈퍼 전파자'를 잘못 관리함으로써 메르스 참사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주체에 대한 과징금 수준은 누구도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