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조기대선이 가시화 되면서 관료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일부 고위공무원들은 유력 대선주자들에 줄을 대기 위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가 하면, 동창회나 향우회를 찾는 발걸음도 잦아졌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앞서자 정권이 바뀔 때에 대비한 소위 '보험들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3일 관가에 따르면,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A차관은 지난해 말부터 고교·대학 동창회 등 개인적인 모임에 가능한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지난해 9월28일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한동안 외부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A차관은 "조기대선이 유력해지고, 정권교체 가능성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모임이 자주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특별히 줄을 대는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나 선후배, 지인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서울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왔다.
A차관처럼 직·간접적으로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애쓰는 공무원들이 부쩍 늘어났다. 눈에 띄게는 못하지만 지인들을 통해 '대선주자 캠프의 누구를 소개시켜 달라', '밥 한 번 먹자'는 등의 일이 많아졌다. 호남 출신으로 승진에서 몇번 누락된 B국장은 정권이 바뀌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다. 틈틈이 정치권에 있는 선후배, 지인과의 연락을 주고 받는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C사장은 "요즘은 아무래도 문 전 대표 쪽 사람들과 자주 연락을 하게 되고, 공무원들과 함께 하는 자리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부산 출신의 D국장은 오히려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문 전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대선주자들은 물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등 굵직한 정치인들이 많아 괜히 누구 편에 줄섰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D국장은 "공무원 입장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것 뿐 아니냐"고 에둘렀다. 그러나 "아직 누가 될 지도 모르는데"라며 대선 판도가 뚜렷하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해외파견이나 연수를 선호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정국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소나기는 피하자'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떠난 국무조정실 E국장을 주변에서는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 총리실 직원들은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바뀌면서 업무가 크게 늘어났고, 향후 정권이 바뀌게 되면 총리실이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청와대 파견근무는 부러움의 대상에서 기피 대상으로 바뀌었다. '식물 청와대'가 된 상황에서 청와대로 가게 되면 업무에 대한 보람은 커녕 부처로 복귀할 때에도 소위 챙겨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다. 대개 청와대에 파견을 가는 국·과장들은 각 부처에서 에이스로 꼽히는 직원들로, 1~2년 파견근무 이후 복귀할 때에는 승진이나 원하는 부서로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기재부에서 일하는 E과장은 "일부 고위직들은 과거 대선을 앞두고 지연, 학연 등을 기반으로 알게 모르게 줄을 대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정치 외풍에 흔들리는 고위직들과 달리 중간 간부나 일반 직원들은 맡은 업무에 충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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