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일 美서 한국경제설명회.."리스크 줄이겠다" 투자 설득 예정
환율조작국 지정 막기 위해 미국산 셰일가스 도입 검토
柳부총리 "추경 편성은 시기상조..1분기 상황 지켜볼 것"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음주 미국에서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과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등 월가 주요 인사들을 만나 한국 경제 상황을 설명하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 정책 향방을 가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몰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국제 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조작국 지정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대(對)미 흑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을 고려해 미국산 셰일가스를 도입하는 등 교역 구조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대해선 "적어도 올해 1분기는 지켜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정치권의 조기 추경 요구에 재차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유 부총리는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설명했다.
우선 유 부총리는 오는 9~12일 방미와 관련,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을 만나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견조하다는 사실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3G(Goldman Sachs, Generals, Gazillionaires)' 내각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골드만삭스의 영향력을 의식한 행보다.
트럼프 정부의 초대 내각 면면을 살펴보면 경제 분야는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장악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내정된 게리 콘은 골드만삭스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다. 그는 골드만삭스의 차기 회장 1순위로 꼽혀 왔다. 유 부총리의 카운터파트인 재무장관에 지명된 스티븐 므누신도 골드만삭스 파트너 출신이다. 유 부총리는 "앞서도 골드만삭스는 공화당, 민주당 정권 가릴 것 없이 재무장관을 배출했다"며 "이번 재무장관 내정자도가 골드만삭스 출신인 가운데 블랭크페인 회장이 (우리 정부와) 트럼프 정부 핵심 경제 인사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블랭크페인 회장에 이어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경제자문단 '전략정책포럼'의 위원장인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과 면담한다. 슈워츠먼 회장은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의 창업자다. 슈워츠먼 위원장과의 만남은 트럼프 정부 분위기와 정책 방향을 헤아려 볼 좋은 기회라고 유 부총리는 기대했다.
아울러 유 부총리는 미국에서 한국경제설명회(IR)를 열고 해외 투자자와 외신을 만나 우리 경제 상황과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유 부총리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이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사실을 분명히 설명하고 올 계획"이라며 "지난해 국회가 탄핵 정국에서도 예산안을 법정 시한 내에 통과시킨 것, 현 정치권도 경제에 대한 정치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적극 알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에 자국우선주의 색채를 물씬 풍기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한 점을 들어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한국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이에 대해 유 부총리는 "미국이 메인 타깃(target)인 중국을 바로 못 건들면서 (대중 압박용으로) 한국을 환율조작국 명단에 올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 지정 3개 기준 중 2개에만 해당돼 떳떳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도 "국제 관계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최대한 우리 입장을 미국 측에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재무부는 대미 무역수지(200억달러), 경상수지(GDP 대비 +3%), 외환시장 개입(GDP 대비 +2%) 등 3개 기준을 모두 충족할 경우 환율조작국(심층분석 대상국)으로, 2개 기준을 초과한 경우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설득뿐 아니라 직접적인 조치도 취할 예정이라고 유 부총리는 밝혔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 12월29일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연간 280만t 규모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도입하는 방안을 담았다. 대미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하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응하면서 미세먼지 문제까지 해결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다.
유 부총리는 여당이 요구한 '2월 추경 편성'은 너무 이르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해 12월23일 당정회의에서 "추경을 내년 2월까지 편성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2017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지 20일 만이었다. 유 부총리는 "추경은 원론적으론 본예산에 담는 게 맞다"며 "경기 하방(떨어뜨리는) 위험이 크다는 관점에서 봐도 일단 올 1분기 지표를 포함한 여러 경제 상황을 보고 결정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13일 취임 1주년을 맞는 유 부총리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지난 한 해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경제지표가 뚜렷이 좋은 게 없어 뭘 잘했다고 주장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특히 올해 경제성장률이 목표치인 3%를 밑도는 2.6%로 예상돼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3.3% 정도가 됐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노동개혁, 서비스산업 발전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다만 유 부총리는 "대내외 리스크에 대응해 경기 하방 리스크를 최대한 막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신산업 투자, 일자리 창출, 구조조정 가속화에도 중점을 뒀다"고 자평했다.
또 취임 후 1년 간의 국정 운영은 '백병전(白兵戰·양편 군사들이 가까이에서 무기를 들고 벌이는 전투)'처럼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유 부총리는 "지난해 이맘때 중국발 금융 불안부터 시작해 북한 핵 도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 대선, 국내 정국 혼란에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대내외 리스크가 수없이 많았다"며 "경제 비상 대응책은 비상이 아닌 상시 방안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경기 리스크 관리, 민생 안정, 구조조정·미래 대비에 박차를 가해 어떻게든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