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강행 무산됐지만 학교마다 찬-반 논란 불가피
새 검정교과서 개발기간 촉박해 부실 가능성도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전면적용 연기'로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희망학교에 한해서만 사용하도록 하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당장 국·검정 교과서 선택을 둘러싸고 혼란이 빚어져 대학 입시마저 영향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우선 내년부터 희망학교에 한해 '연구학교'를 선정, 국정교과서를 선택해 사용하도록 한 것은 예산과 가산점으로 학교와 교사들을 유혹하고, 연구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들을 유인해 사실상 국정교과서 채택을 유도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일단 2017학년도에 국정교과서 사용을 희망하는 모든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주 교재로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연구학교에는 학교당 1000만원 등 예산 지원도 병행하기로 했다. 연구학교가 아닌 나머지 학교는 기존대로 현행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면 된다.
연구학교는 각 학교의 운영위원회 논의를 거쳐 학교장이 신청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정교과서 사용에 반대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 등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서울 사립고의 한 교사는 "교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혹은 연구학교 지정시 받는 예산이나 교사의 승진가산점 등 각종 혜택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선택하는 학교가 나올 수 있다"며 "학부모들 역시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될 각종 연구학교 프로그램 때문에 연구학교 지정을 원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역시 교육부의 국검정 혼용 방침에 대해 "연구학교 지정을 통해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한 것은 현장 갈등과 혼란이 우려되는 만큼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에 따라 다른 교육과정이 적용될 경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서로 다른 교육과정으로 배우고 같은 한국사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도 논란이다.
이와 관련, 이준식 부총리는 "수능은 공통된 학업성취도로 평가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달라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학생들은 "불안한 마음에 두 가지 교과서를 모두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8년부터 국·검정 교과서를 혼용하기 위해서는 현행 검정교과서 역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다시 개발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검정교과서는 개발기간이 최소 1년6개월 이상이지만 교육부는 이 기간을 1년6개월에서 1년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교과서는 부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교육계의 시각이다.
특히 검정교과서를 새로 개발하더라도 현재 마련된 편찬기준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만든 편찬기준에 따른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은혜 의원은 "이번 교육부 발표는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지키려는 꼼수로 본다"며 "교과서 금지법 통과를 위한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는 교과서 국정화가 정치적 문제가 아닌 교육적 차원에서만 논의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교육부의 국·검정 혼용 방침은 민의를 거스르는 폭거이며 이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민주적 절차와 민주적 사회운영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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