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강달러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달러에 자국 통화를 연동한 환율 페그제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홍콩,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자본유출, 외환보유액 축소 등에 따라 페그제 포기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달러에 연동된 자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 달러를 풀어 자국 통화를 매입하고 반대로 자국 통화가 급등하면 달러를 매입해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안정된 환율제도를 유지해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 금리인상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달러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환율안정에 드는 비용이 치솟고 있다. 페그제 유지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면서 투기세력들의 통화약세 베팅이 늘어나는 것도 부담이다.
앞서 나이지리아의 경우 저유가로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자 지난 6월 페그제 폐지를 선언했다. 이후 나이라화가 33% 넘게 폭락했고 지난 10월 물가 상승률이 18.3%에 달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월 페그제를 포기한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도 인플레이션이 16.4%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보다 재정상황이 나은 홍콩과 사우디의 경우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페그제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히 홍콩은 강달러와 함께 진행되는 위안화 약세로 중국 본토 투자가 줄어드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M&G인베스트먼츠의 에릭 로너간 펀드매니저는 "홍콩 달러를 매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달러 랠리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고 투자를 다변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역사적인 감산 합의로 유가가 살아나고 있지만 산유국들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등 6개 걸프 산유국들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2014년 고점에 비해 20% 넘게 줄었다.
UAE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환율 방어가 어려워지자 달러페그제 포기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적이 있다. 사우디 역시 저유가 감내를 위해 외화빚을 늘리면서 페그제 폐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WSJ은 내년 미국 금리인상이 가속화되고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경우 페그제 유지 국가들은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환율 개혁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면서 이들이 시장의 테스트를 잘 넘겨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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