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개월간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였고 우리 경제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가장 강조한 화두는 경제위기 극복이었다. 지난 수개월간 지속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전 사회를 휩쓸면서 한국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생산과 소비는 얼어붙었고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다.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청와대 정책 라인은 일손을 놓고 있다. 정부는 아직도 내년도 정책 방향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지표도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7년7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정세균 의장은 "탄핵안 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면서 "공직자 여러분은 흔들림 없이 민생을 돌보는 일에 전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시바삐 국정을 회복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는 12일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기업들도 탄핵안 가결 이후 그동안 밀린 인사를 단행하고 내년 업무 계획을 수립하는 등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기업인들을 다시 청문회에 불러 앉히려는 움직임이 있어 산업계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6일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등 9명의 대기업 총수가 한꺼번에 출석했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에 대기업들이 자금을 댄 배경을 캐내기 위해 기업 총수들을 윽박질렀으나 청문회는 별 소득 없이 끝났다.
국회의원들이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을 것"을 촉구했으나 정작 그동안 각종 수단을 이용해 기업들을 압박한 것은 정치인들 본인이었다. "(정부의 기금 요청을 왜 단호하게 끊지 못하느냐"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그럼 국회에서 입법해서 못하게 해달라"고 답한 것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기업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청와대나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기 힘든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난 청문회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은 정경 유착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기업 총수들에게 정작 자기가 출마한 지역구 민원을 제기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국회는 애꿎은 기업인들만 불러 세울 일이 아니다. 지난 6일의 기업 총수 청문회의 재탕이 될 수밖에 없다.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정조사임에도 국회는 정작 최순실은 청문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럴 거면 왜 청문회를 했느냐"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정말 국회가 백척간두에 선 경제를 살리기 원한다면 기업인들이 현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강희종 산업2부 차장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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