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설예은 경장
뛰어난 공감능력·부드러운 카리스마
학생들 속 얘기 이끌어내 문제 해결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스포’해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청룡동에 위치한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만난 설예은 경장(28)은 자신을 ‘스포일러’라고 소개했다. 학생들에게 학교전담경찰관(SPO)의 의미를 물었을 때 ‘스포’라고 답하는 학생이 많은데 이럴 때마다 설 경장은 ‘학교전담경찰관은 스포일러 같은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설 경장은 “학교폭력을 당했지만 어떤 절차를 통해 보호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한 명의 학생이라도 학교폭력의 아픈 경험을 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피해당한 학생들에게 정보를 알려줘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게끔 돕는다”고 자신의 업무를 설명했다.
SPO는 학교폭력 특별예방교육과 청소년 선도 및 보호 활동, 학교폭력 대책 심의 위원, 학교폭력 현장 대응 등의 일을 맡고 있다. 특히 서울 관악구는 신림역 일대 등 비행 우범 지역과 청소년 유해환경 업소, 112 신고 건수가 많아 서울경찰청에서 1급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설 경장은 관내 56개 학교 중 13개를 담당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설 경장은 관내 청소년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데 늘 진심이다. 서울 관악경찰서 SPO 팀 선배들은 설 경장에 대해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특유의 부드러운 성격으로 청소년들을 잘 상대한다”며 “강하고 단호하게 청소년을 대하는 다른 팀원들의 역할과 적절히 융화돼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강점 덕분에 설 경장은 비행 청소년들의 내면과 이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을 모두 들여다보고 숨겨진 문제를 짚어내기도 한다. 오후 6시께 한 학생이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청에서 청소년들의 문신을 무료로 지워주는 ‘사랑의 지우개’ 프로그램에 선발된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팔에 새겨진 문신 때문에 학교 친구들이 자신을 피하고, 여행사 취업에 제약이 생기는 등의 문제를 겪고 설 경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설 경장이 학생과 지속해서 만나면서 사연을 듣고 사랑의 지우개를 함께 신청한 결과,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될 수 있었다.
이날 설 경장은 학생의 손과 팔을 살펴보며 시술 방법, 시술 경과 등을 차근차근 물어봤다. 또 친구 관계와 학업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근황을 확인하며 학생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조언을 건넸다. 설 경장은 “중국어를 참 잘하고 착한 친구인데, 머리를 염색하고 문신을 하고 있어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했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사랑의 지우개를 신청할 때 성심껏 도와줬는데, 다행히 이 친구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후 6시40분이 되자 설 경장은 저녁 식사할 틈도 없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서원치안센터로 이동했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관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는 ‘드림폴(Dream-Pol)’이 진행되는 날. 치안센터 직원들은 주간에만 근무하기 때문에 센터가 비는 야간 시간을 활용해 SPO와 청소년들 간 만남의 장이 열린다.
시계 침이 오후 7시를 가리키자 청소년들이 하나둘 서원치안센터로 모였다. SPO 팀원들은 청소년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러주며 친근한 삼촌, 이모처럼 반갑게 맞이했다. 설 경장은 이들 곁에 앉아 피자를 직접 내어 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센터 한쪽에 걸린 관내 지역 지도를 함께 보면서 어떤 학교에서 누가 뭘 하고, 어떤 학생들끼리 친한지 등 관내 청소년들의 관계와 근황을 꼼꼼히 파악했다.
설 경장은 “평소에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고 친해지면 자신들의 속 이야기를 편하게 꺼내 함께 문제상황을 찾고 개선할 수 있다”면서 “아이들과 라포(상담이나 교육을 위한 전제로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형성하면 나중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해 물어볼 수 있다. 때론 아이들이 수사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청소년들이 ‘맛있게 먹은 만큼 사고 치지 않기.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약속하며 치안센터를 떠날 때까지 설 경장은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SPO 업무를 하며 힘든 점도 물론 없지 않다. 설 경장은 학부모들의 민원 전화를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그는 “학생을 선도해야 하는 상황에서 학부모님이 우리 아이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면담을 거부하거나 ‘자식을 키워봤느냐’는 식으로 비난하기도 한다”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힘들지만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친구들을 우리 경찰까지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칭찬과 사랑으로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설 경장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 역시 아이들이다. 설 경장은 24시간 업무용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한밤중에도 학생들의 연락을 받아줄 정도로 학생들의 안전과 선도에 진심이다. 그는 “경찰 제복을 입고 학교에 나가면 학생들이 근무복이 멋있다며 먼저 다가와 주기도 한다”며 “처음엔 차갑고 퉁명스럽게 대하던 학생들도 라포가 충분히 형성된 후에 ‘도와주세요’라며 먼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기관을 찾아주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설 경장은 SPO를 꿈꾸는 후배 경찰들에게 “SPO는 경찰관으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한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행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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