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정부 늑장대처에 수요 급감
한우ㆍ쌀값도 폭락, 갈치 어획량 반토막
[아시아경제 조호윤 기자]"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에 자식같이 키우던 오리들을 모두 살처분할 위기에 처했다. 처분해도 정부 보상비는 80% 수준이라 타격이 크다."(전남 나주 오리농장주 A씨)
"11~12월께 잡히는 갈치가 크기도 제일 크고 맛도 좋아 비싼 값에 팔리는데 한일 상호 배타적경제수역(EEZ)협상 결렬에 허탕만 치고 있다. 6개월간 잡은 갈치 어획량이 작년 반 토막 수준."(제주 갈치조업 선주 B씨)
농축어업 농가들이 잇단 악재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침체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 최순실 게이트 등 국내 정세 혼란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외부 변수에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 3년만에 터진 AI로 수만마리를 살처분해야하는 오리농가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또 반년째 표류중인 EEZ 협상 결렬에 제주 갈치 어선과 식당들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한우 값과 쌀 값도 정부의 무대책으로 산지 도매값이 폭락해 농가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최근 AI 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격상함에 따라 26일 0시부터 28일 0시까지 48시간 동안 전국 가금류 관련 사람, 차, 물품 등을 대상으로 일시 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전국 최대 닭 산지인 경기 포천시에 이어 최대 오리 산지인 전남 나주시에서도 AI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등 확산되는 추세다. AI 확산이 꺾이지 않으면서 오리농가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평택의 한 오리농가 주인은 "수년 째 같은 재난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의 한 발 느린 대응에 농가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장 생계에 큰 지장을 받는데 정부의 실질적인 피해 보상과 예방책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AI로 인해 오리 수요도 급감했다. 실제 지난 7∼9월 가구당 오리고기 4주 평균 구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으나, 평균 구매액은 13.6% 감소한 1만3929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수요 감소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우와 쌀 값 폭락으로 농민들의 피해도 커지는 추세다. 한우의 경우 정부가 지난 9월28일 시행한 '청탁금지법'의 여파로 선물ㆍ외식 수요가 급감했다. 도축마릿수는 감소하고 있지만 수요 감소 폭이 더 커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다음 달부터 내년 2월까지 도축 마릿수는 전년 동기간보다 6.5% 감소한 21만9000 마리로 전망됐다.
대목으로 불리는 연말연시 특수도 실종된 지 오래다. 다가오는 설을 맞아 명절 선물 수요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KREI는 수요 감소로 인해 한우고기 재고가 늘어날 경우 내년 2월 한우 1등급 도매가격은 경영비 이하에서 형성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한우업계의 소비촉진 행사, 급식 확대 등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쌀 농가들은 계속되는 가격 폭락에 거리에 내몰릴 판이다. 올해 쌀 생산량이 6년 만의 최대 풍년이었던 작년과 비슷해 쌀값이 곤두박질 친 것.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쌀 수매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어민들도 속이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갈치 조업하는 어가들의 피해가 가장 크다. 한일 EEZ가 반 년째 답보상태를 지속하면서 조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국내 갈치 총 어획량은 9228t으로, 전년동기대비 49.09%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민뿐만 아니라 중간 유통단계까지 줄도산을 맞고 있다. 갈치를 가공해 재판매하는 한 업자는 "보통 때 같으면 백화점, 홈쇼핑에 납품하기 위해 포장 기계가 쉴 틈 없이 가동돼야 하지만, 현재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호윤 기자 hod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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