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해온 새누리당의 친박(친박근혜) 중진들이 28일 박 대통령에게 '명예퇴진'을 건의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안 의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친박 진영이 본격적인 '출구전략' 모색에 나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야당은 친박들의 집단 움직임이 탄핵 전선을 교란하기 위한 꼼수라며 경계를 나타냈다.
◆서청원 의원 주도, 일부 친박 중진 동의=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청원·정갑윤·최경환·유기준·윤상현·정우택·홍문종·조원진 의원 등 친박 중진 의원 8명은 이날 비공개 오찬 회동을 열어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채우기보다 스스로 물러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참석자들은 친박 맏형격인 서 의원이 이런 방안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참석자 대부분도 공감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만약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의결될 경우 여당과 한국 사회가 직면할 혼란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장 180일이 소요되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동안 박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에 머물게 된다. 또 국정도 올스톱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탄핵까지 가지 않고 대통령 스스로 물러서는 방안에 공감했다는 설명이다.
참석자들은 회동 직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을 간접적으로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체적인 퇴진 시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 각계 지도층 원로들이 늦어도 내년 4월까지 박 대통령이 '질서있는' 퇴진을 해야 한다고 시한을 못박은 것과 대조된다.
◆"사회 혼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VS "꼼수일 따름"= 서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논의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간 친박 중진 의원들이 잦은 모임을 통해 정국 대응 방안을 논의해 왔으나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 건의는 이날 처음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 친박들은 그동안 탄핵안 발의와 의결을 저지하는데 전력해 왔다. 하지만 당내 비주류 의원들이 대거 탄핵에 찬성하는 움직임을 드러내면서 친박계 안에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아울러 매주 토요일 100만명 넘는 시민들이 청와대 앞 광화문 광장에서 벌이는 촛불시위는 되돌릴 수 없는 성난 민심을 확인시켰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일주일간 여당 친박은 물론 비박(비박근혜) 진영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위한 6인 중진회의에 참여 중인 한 비박계 의원은 이날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미 대통령께서 어느 정도 판단을 하실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기에 친박·비박 회의도 구성됐던 것"이라며 "순리대로 풀어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대통령 퇴진 이후 혼란을 걱정할 때= 다만 비주류 지도부의 한 인사는 "지금 박 대통령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사실 '버티기' 외에는 없다"면서 "이를 잘 알기에 최근 비박 진영에서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대통령 퇴진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야당은 여당 친박 중진들의 급작스러운 박 대통령 퇴진 요구에 조만간 이뤄질 탄핵안 발의와 본회의 처리를 저지하려는 꼼수가 숨어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야당 측은 "이제까지 그런 제안이 한두 번 나온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페이스북에 "친박 중진들의 질서있는 퇴진 주장에도 박 대통령의 결단은 없고 이미 실기했다"며 "탄핵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친박 중진들의 회동 직후 일부 참석자들은 "서 의원이 강하게 명예퇴진을 주장했을 뿐 다른 의원들이 (모두) 찬성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못박았다. 일부 참석자들의 주장과 동의가 있었을 따름이지, 전반적으로 합의한 적은 없다는 설명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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