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있잖습니까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의 사람이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릴 때
그런 날은 열 일 제치고 침상을 정리합니다
날 선 뼈들을 발라내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가장 좋은 침대보를 새로 씌우죠
이봐요, 여기로
거울 앞으로 가 거울 속의 사람을 마주 봅니다
거울 속으로 손을 뻗지 말고
여기서 손짓해 거울 밖으로
그를 꺼내야 합니다
어서 와요.
정성 다해 만져줘야 할 몸이
이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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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힘든 날이 있다. 비겁해서이기도 하고 나약해서이기도 하고 여하튼 너무 무참해 거울에 언뜻 비친 너절하고 추한 나를 마주 보기 어려운 날이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당연히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어찌해야 할까, 저 분노를, 아니 실은 결코 다스릴 수 없는 이 깊디깊은 자책을 말이다. 시인은 말한다. "그런 날은 열 일 제치고 침상을 정리"하라고. 저 맑은 볕에 저 투명한 바람 곁에 "날 선" 나를 걸어 두라고. 그리고 "가장 좋은 침대보를 새로 씌우"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자신을 "손짓해 거울 밖으로" 꺼내라고. 여기 "정성"을 다해 "만져줘야 할 몸이" 있으니 이리로 "어서" 오라고 말이다. 이 시를 두고 굳이 프로이트를 떠올릴 것까진 없다. 나는 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비록 누추하고 비루하고 때론 끔찍하고 참담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껴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사랑은 처절한 각성이자 고통스러운 결행이다.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