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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살고싶다" 죽음으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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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폭력과 순수의 하드보일드' 내달 4일까지 '소나티네' 등 대표작 11개 상영

[이종길의 영화읽기]"살고싶다" 죽음으로 말하다 영화 '소나티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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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논리를 단숨에 뛰어넘는 폭력...허무주의적 분위기서 삶을 포기하는 주인공
역설적으로 生의 의미 강조하는 장치...죽음의 경계서 순수한 아름다움 찾으려 해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권총을 든 사내. 무미건조한 얼굴로 은행원을 내려 본다. 대뜸 검은 자루를 던진다. 다른 은행원들과 손님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다. 각자 제 할 일을 한다. 그 역시 평범한 고객처럼 여유롭게 주위를 살핀다. 돈다발을 건네받고 유유히 은행을 빠져나온다. 영화 '하나비(1997년)'에서 경찰복을 입고 은행을 터는 니시 형사다. 사건은 일상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영화들이 어떻게 하면 액션을 화려하게 포장할지에 골몰할 때 오히려 허식을 배제했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연출한 작품 대부분은 이 역설적 대비를 축으로 진행된다. 딸을 잃고 아내 가요코마저 시한부 인생을 사는 니시는 과묵하다. 세상에 불만이 있어 보일 정도다. 이 흐름에서 툭 튀어나오는 물리적 폭력은 이성과 논리를 단숨에 넘어선다. 허무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삶을 포기하거나 버림으로써 그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죽음을 통해 인간의 삶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살고싶다" 죽음으로 말하다 영화 '하나비' 스틸 컷


독특한 영화문법을 선보여온 기타노의 대표작들이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아트나인에서 상영된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와 엣나인필름이 주최하는 '기타노 다케시: 폭력과 순수의 하드보일드'다. '그 남자 흉폭하다(1989년)', '소나티네(1993년)', '모두 하고 있습니까?(1995년)', '키즈 리턴(1996년)', 하나비, '자토이치(2003년)' 등 열한 작품을 선보인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보통 사람 혹은 아웃사이더다. 이들의 애환이나 문제가 본질적인 욕망인 폭력, 조소, 실어의 형태로 카메라에 담긴다. 하나비의 니시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잠시 아내의 병문안을 간 사이 후배 형사 호리베가 습격을 당해 반신불수가 된다. 그는 범인을 죽이고 경찰직을 그만둔다. 은행을 털어 거머쥔 돈으로 호리베를 돕고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살고싶다" 죽음으로 말하다 영화 '소나티네' 스틸 컷


기타노는 이 여정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주목한다. '하나비(花火)는 불꽃놀이를 뜻한다. '花'는 자연뿐 아니라 정신에 감춰진 신비적인 축을 표상한다. 삶과 사랑, 우정 등이다. '火'는 악이다. 강렬한 폭력과 죽음이라는 형태로 억압된 노여움이나 미움을 통해 충동적으로 분출된다. 기타노는 花와 火의 이중적인 장치로 우리의 삶이 존재론적 가치를 갖고 의미론적인 삶의 대상임을 자인하게 한다. 또 니시의 운명을 火 앞에서 불꽃같이 사라져버리게 해 이상적 가치의 삶이 얼마나 무기력하며 덧없는지를 설파한다.


이 같은 서술은 소나티네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방아쇠를 당기면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총알처럼 싱거운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인생의 절박함을 그린 영화다.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야쿠자 무라카와는 집단 내분으로 부하들과 함께 오키나와 해변의 허름한 집에서 머문다. 이곳에서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지만 낚시꾼으로 위장한 킬러에게 부하를 잃으면서 복수에 나선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살고싶다" 죽음으로 말하다 영화 '소나티네' 스틸 컷


기타노는 야쿠자라는 하드보일드 소재를 통해 어둡고 냉혹한 현대사회의 생활상을 파헤친다. 하루하루가 줄타기에 가까운 이들은 타자 앞에서 강한 척하며 욕망을 내세운다. 때로는 죽음을 초월한 듯한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해변에 머물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기타노는 이 내면을 구성하는 순수함을 바다로 표현한다. 이곳에서 폭죽으로 어린아이처럼 총싸움을 하고, 별을 바라보며 짧고 달콤한 몽상에 잠긴다. 우여곡절을 겪는 무라카와는 이 근원의 공간으로 향하는 삶 앞에서 죽음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고자 한다. 이 모습은 오프닝에도 함축돼 나타난다. 작살에 걸린 푸른 물고기가 자신의 운명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무라카와를 상징한다.


기타노는 왜 야쿠자나 형사와 같은 주인공을 자주 등장시키느냐는 질문에 "죽음에 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키즈리턴의 다카키와 미야자키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각각 권투선수와 야쿠자가 된다. 제도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일탈의 과정을 겪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 야쿠자는 미성숙한 사회의 일부분이자 일탈된 장소다. 권투장은 일정한 질서 안에서 선수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곳이다. 이 각각의 세계에서 두 주인공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실현시킨다. 이 과정에서 죽음의 공포는 그들 삶의 일부분이자 전부가 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살고싶다" 죽음으로 말하다 영화 '키즈리턴' 스틸 컷


기타노는 왜 폭력이나 죽음이라는 경계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는 걸까. 우리 일상의 죽음에 대한 공포처럼 죽음을 멀리해서는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히려 잔혹한 죽음에 대한 공포 안에서 죽음을 의식하는 듯하다. 소나티네 속 무라카와와 여인의 대사가 이를 짐작하게 한다. "쉽게 죽일 수 있는 건 쉽게 죽을 수도 있단 말이네요. 강하시군요. 전 강한 사람이 좋아요." "강하면 권총 같은 거 안 써." "강하니까 마구 쏠 수 있죠. 그래도 죽는 게 두렵지 않죠?" "죽는 걸 너무 두려워하면 죽고 싶어져."


이러한 생각은 하나비에서도 나타난다. 형사들에게 쫓기는 니시와 가요코의 마지막 여행지는 바다다. 니시는 아내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파도로 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모든 욕망을 툴툴 털어버리고 자결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1992년)'에서는 우연히 서핑보드를 주운 농아 청년이 매일 바다로 나가 서핑을 한다. 그는 대회에서 우승을 하려고 파도를 넘지 않는다. 그저 바다가 좋을 뿐이다.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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