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 대통령의 '섬뜩한' 미소

시계아이콘01분 36초 소요

'구석기 시대' 얘기쯤 되겠지만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끔찍했던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새벽부터 0교시 수업을 시작으로 오후 6시에 '일단 하교'를 했다가 저녁 7시반에 '재등교'를 하고 자정까지 '야자'를 하는 일상이 3년내내 계속됐다. 집이 멀거나 타지에서 유학을 온 친구들은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다녔지만 그땐 그럴 수 있는 때였다.

당시 선생님들의 체벌은 그저 사랑의 매였다. 중학교 시절엔 반 친구들 모두가 팬티 바람으로 양손을 깍지 끼고 엎드려 뻗친 채 운동장에 흙먼지를 날리며 한 바퀴를 도는 '단체 기합'을 받기도 했다. 이런 벌을 준 체육선생님은 흡사 전쟁터에서 포로를 규율하는 것 마냥 썬글라스를 끼고 바라보고 있었다. 땅바닥에 긁혀 피를 흘리는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가에 옅은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압권은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실력도 뛰어난데다 항상 평안한 미소를 머금고 수업을 진행해 평판이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을 나무랄 때는 돌변했다. 아니 표정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대걸레 몽둥이를 잡고 온 몸의 힘을 팔에 실어 엉덩이를 강타하곤 했는데 힘껏 몽둥이를 내리치면서도 선생님은 끝까지 그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동영상을 찍어 교육청에 신고하네 마네 할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잊고 있었던 그 선생님들의 미소가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오버랩됐다. 박 대통령이 작금의 난국 타개를 위해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 하야' 시위를 벌이는 국회의원들 앞을 예의 그 엷은 미소를 띠고 지나간 것인데, 수십년 전의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그 미소는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었겠지만 그것이 평생 훈련된 미소일지라도 뜨아하다는 생각을 넘어 섬뜩함마저 들게 한다.


마침 그 전날에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서 '황제 조사'를 받으면서 팔짱을 낀 채 옅은 미소를 짓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지 않았던가. 약속이라도 한 듯한 두 사람의 미소는 '그래 두드려봐라. 내가 꼼짝이라도 할 줄 아느냐'고 얘기하는 듯하다.


그 미소는 박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왜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을 목놓아 외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표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태연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을까. 국정 농단과 농락이라는 몽둥이로 온 국민의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두들겨 놓은 체 말이다.


헌법 정신을 스스로 무참히 훼손해 놓고 대통령직에 관해서는 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또 어떤가. 물론 대통령 궐위 상황이 가져올 정치·경제·사회적, 그리고 외교적 파장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고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은 임기 내내 분란은 계속 이어질 텐데 정작 본인은 외국정상들을 만나 예의 그 태연한 미소만 짓겠다는 것인지.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모여 촛불을 들고 '퇴진'을 외쳤다. 그땐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란 걸 촛불은 말해준다. 청와대에서 100만 촛불의 함성을 들었다면 '봉건시대'를 살았던 박 대통령은 민주 국민의 함성에 합당한 성의있는 답변을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