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분 7초

화산연구팀, 샘플 채취해 분석 작업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화산연구팀이 헬기에서 내려 암석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AD


[장보고 과학기지(남극)=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아시아경제는 오는 18일까지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를 현장 취재한다. 지난해 아라온 호에 탑승해 현장 취재한 [북극을 읽다]에 이어 [남극을 읽다]를 연재한다. 장보고 과학기지 연구원들의 활동과 남극의 변화무쌍한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한다. 남극은 인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연구기지가 들어서 남극에 대한 연구가 무르익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가 불거지는 가운데 남극을 통해 아주 오래 전 지구역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남극을 읽다]를 통해 남극의 현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편집자 주]
<#10_LINE#>
9일 오전(현지 시간) 날씨는 상쾌하게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맑았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보는 아침은 전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24시간 동안 해가 지지 않으니 낮과 밤의 차이는 없습니다. 눈을 감으면 밤이고 눈을 뜨면 낮인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지 근처에는 바람도 없었습니다. 헬기가 이륙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외부 기상 상황은 달랐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를 벗어나면 바람이 불었고 구름이 낮게 끼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오전 헬기 운항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총 네 대의 헬기가 있습니다. 가까운 거리를 가는 헬기 한 대만 이륙하고 나머지 세 대의 헬기는 대기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는 시간별로 날씨 변화가 심해 늘 긴장해야 합니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리트만 화산에서 가스가 분출되고 있다.


오후가 되자 상황은 변했습니다. 헬기 이륙이 가능했습니다. 극지연구소 화산연구팀과 함께 헬기를 타고 리트만 화산 샘플 채취에 나섰습니다. 오후 1시30분에 헬기에 올라탔습니다. 탑승하기에 앞서 선글라스를 챙기고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습니다.


극지 피복을 단단히 입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화산 지역을 탐험할 때는 중간 중간 헬기가 육지에 착륙합니다. 헬기가 땅에 내려 낮으면 고지대이기 때문에 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남극에는 멜버른, 리트만, 에레부스 등이 3대 활화산으로 꼽힙니다. 에레부스 화산은 지금도 시뻘건 용암이 직접 관찰되는 곳입니다. 멜버른 화산은 2014년 가스 분출이 확인됐습니다. 우리나라 연구팀이 약 20년 만에 발견했습니다. 이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입니다. 리트만 화산도 황성분이 뿜어져 나오는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헬기에서 바라본 남극의 산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약 130㎞ 떨어진 리트만 화산까지 헬기로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가끔 바람의 영향 때문인지 헬기가 흔들렸습니다. 저기압과 바람 등으로 리트만 화산 인근에 착륙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다만 리트만 화산 근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는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누런 가스가 설원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솟아났습니다.


리트만과 비교되는 화산이 멜버른 화산입니다. 장보고 과학기지 근처에 있는 멜버른 화산은 우리나라가 도맡아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리트만은 이탈리아, 에레부스는 미국이 연구 역할을 수행합니다. 모두 활화산이기 때문에 연구 작업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헬기에서 바라보면 곳곳에 크레바스(갈라진 틈)를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가스분출을 확인한 우리나라 이종익 박사팀이 가스 방출을 확인한 뒤 후속 연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종익 박사팀이 멜버른 화산의 샘플을 채취했고 이를 시작으로 연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팀에는 일본의 화산가스 전문가도 합류했습니다.


이종익 박사의 연구를 이어받아 2016년 화산 연구팀은 극지연구소 이미정 박사팀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리트만 화산 인근에서 착륙에 실패했는데 헬기는 여러 차례 화산 지역 근처에 착륙했습니다. 이미정 박사팀이 망치 등을 이용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암석을 수집했습니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헬기에서 본 남극의 푸른 하늘과 설원.


이미정 박사는 "수집한 암석은 주성분과 미량 원소 분석 등을 통해 화산암의 종류를 알 수 있다"며 "주성분을 분석해 보면 어떤 지구 환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헬기에서 내렸을 때 착륙지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남극에는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곤두박질칩니다. 칼바람이 스쳐지나가면서 '윙윙'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갔습니다. 체감온도는 영하 15도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헬기에서 찍은 장보고 과학기지 근처의 멜버른 화산.


3년 정도 진행된 멜버른 화산에 대한 연구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매년 11월에서 다음해 1월까지 3개월 동안만 관찰이 가능합니다. 아직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감시 카메라가 멜버른 정상에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이 같은 감시 카메라 설치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화산연구팀이 멜버른 활화산에 관심을 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화산은 폭발하기 직전까지 화산 가스 성분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이미정 박사는 "남극 활화산에 대한 가스 분석 등을 통해 언제 화산이 분출하는지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며 "이를 응용하면 백두산이 어느 시점에서 분출하는지에 대한 기초 데이터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이미정 화산연구팀(오른쪽)이 샘플을 찾고 있다.



◆한승우 3차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대장 "큰 짐 내려놓았다"
[남극을 읽다]남극 상공을 날다 ▲한승우 3차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대장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 1년의 시간은 길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승우 장보고 과학기지 3차 월동대장의 말이다. 한 대장은 지난해 11월 장보고 과학기지에 들어와 꼬박 1년을 이곳에서 월동대원 16명과 생활했다. 10일(현지 시간) 4차 월동대장에게 임무를 인계한다.


남위 74도에 위치한 장보고 과학기지는 62도에 있는 세종 과학기지와 차원을 달리한다.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약 4개월 동안 어둠만 있는 '극야'가 엄습한다. 인간에게 치명적(?) 단점으로 작용한다.


장보고 과학기지는 5~8월까지 사방이 어둡다. 극야 기간이다. 이때는 해가 뜨지 않는다. 24시간 어둠만 내린다. 햇볕 자체가 들지 않는다. 주변의 이탈리아와 독일 기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철수하고 아무도 없다. 오로지 17명의 장보고 과학기지 월동대원들만이 외롭게 남위 74도를 지킨다.


"항상 어둡고 주변에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완전고립의 상태가 된다. 그 느낌과 불안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대장으로서 대원들이 다치거나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극야뿐만 아니라 4월 중순부터 9월까지는 영하 20도의 극한 기온이어서 밖에 나갈 수도 없다."


극야 기간이 찾아오면 대원들은 불면증 등 여러 가지 신체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 대장은 전했다. 물론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의료진이 파견돼 있다. 물리적 상처가 아닌 정신적 고통까지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 대장은 "극야 기간에 아침 회의를 하면 대원들의 얼굴 표정이 모두 어두웠다"며 "그럴 때마다 가능한 간섭하지 않으면서 운동과 영화 감상, 책읽기 등으로 여가 활동에 나서도록 이끌었다"고 말했다.


몇 개월 동안 지속되는 극야기간 동안 굳이 남극에 상주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 대장은 "남극에서 상주기지와 임시기지의 위상은 극과 극의 차이"라며 "쇄빙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한 나라 극지 연구의 상징성이 달라지는 것처럼 이곳 월동대원들이 상주함으로써 남극에 대한 우리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년 동안 장보고 과학기지를 지켜온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 대장은 "무엇보다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체력 단련실이 존재한다.


한 대장은 "체력 단련실 보다는 조금 넓고 농구 등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없다"며 "극야 기간 동안 대원들이 몸을 부딪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실내 운동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외부와 고립됐을 때 응급상황도 염두에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응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대장은 "지금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극야 기간 동안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갈 수 있는 곳은 350㎞ 떨어진 미국기지밖에 없다"며 "미국 기지가 여의치 않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가정해 놓은 상태의 플랜B(Plan B)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967년생인 한 대장은 한화와 삼성을 거쳐 2006년 극지연구소에 입사했다. 연구 전문가가 아닌 관리 전문가이다. 2010년 세종과학기지에서 총무로 월동을 한 경험도 있다. 한 대장은 1년을 마무리하면서 "안전이 제일인데 3차 월동대원들이 모두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고 환하게 웃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