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이외 국회방문 두번째…野 회담 응하지 않자 朴 전격 방문
靑 "야당대표 회담 성사 위해 계속 노력할 것"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이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국회를 방문한 것은 집권 1년차인 2013년 9월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장외투쟁을 벌이던 야당과 담판에 가까운 회동을 가졌다. 박 대통령은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대국민 사과 요구에 "국정원에 지시할 위치가 아니었다"면서 "지난 정부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거부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박 대통령과 야당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 비선개입 의혹에 두 차례 대국민사과를 한데 이어 여야에 정국 수습을 위한 영수회담을 먼저 제안했다. 청와대는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겠다는 취지를 밝히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굴욕(?)'을 무릅쓰고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동을 우선적으로 추진한 것은 여야 영수회담을 우회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영수회담을 열어 김 내정자의 거취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혔지만 야당은 '김 내정자 지명 철회'와 '박 대통령 2선후퇴' 등 조건이 해결돼야 영수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지난 4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에서 '김 내정자 권한'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야당의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이후 청와대 관계자가 "총리 권한은 김 내정자가 100% 행사하겠다고 말한 그대로"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로서는 야당 대표들을 직접 접촉하는 방식이 여의치 않자 정 의장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정 의장과의 면담에서 "야당이 요구하는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 카드까지 철회할 수 있다"고 밝혀 야당에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 의장과의 회동 목적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은 명확하다.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영수회담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당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장실 관계자도 박 대통령과의 회동과 관련해 "전날 청와대에서 '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어려우니 의장과 먼저 만나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며 여야 영수회담의 징검다리라는 점을 시사했다.
한광옥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이 영수회담 성사를 위해 동분서주했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박 대통령과 정 의장 회담을 성사시킨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한 실장과 허 수석은 7일 하루종일 국회에 상주했지만 끝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를 만나지 못했다. 또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 하야촉구결의안'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좁아진 입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1월 첫째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5%로 곤두박질치면서 청와대의 위기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정 해법 모색이라는 의도도 있지만 동정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야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국회를 찾는 모습을 연출해 동정심을 자극할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주말 민중총궐기가 예정돼 있어 지난 주말보다 더 많은 인파가 집회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점도 청와대로서는 부담이 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주를 넘기면 박 대통령 거취에 심각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최대한 이번 주 안에 매듭지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김 내정자 카드 철회까지 시사한 만큼 관심은 영수회담 성사 여부에 집중될 전망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총리 임명 철회 카드를 꺼낸 만큼 회담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 청와대도 "야당 대표와의 회동이 성사되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영수회담이 진행되면 박 대통령은 2선 퇴진 압박을 거세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 임명한 총리를 수용하면 국정에서 사실상 손을 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관련해 "법에 명시된 내용도 아니고 정치적인 사안"이라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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