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국내 대기업 자금을 갈취할 기반을 닦는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긴급체포됐다.
청와대 재벌갈취·국정유출 등 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2일 밤 11시40분께 안 전 수석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검찰은 “주요 혐의에 대해 범행을 부인하고, 출석 전 핵심 참고인들에게 허위 진술을 요구했다”고 체포사유를 밝혔다. 공범으로 지목된 최씨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돼 실행범인 안 전 수석을 체포하지 않을 경우 증거인멸 위험이 있는 점도 고려됐다.
검찰은 48시간 내 안 전 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안 전 수석 본인 동의로 3일 새벽까지 심야조사를 이어갔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직 중 최씨를 도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돈을 내놓을 의무가 없는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을 출연하게 한 혐의(직권남용)를 받는다. 미르, K스포츠 두 재단은 각각 국내 16개 그룹(486억원), 19개 그룹(288억원)으로부터 총 774억원을 단기간 내 출연받아 설립됐다.
안 전 수석은 최씨가 개인회사 더블루케이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로부터 장애인 펜싱팀 선수 에이전트 계약을 따내고, K스포츠재단을 통해 롯데그룹으로부터 투자 명목 70억원을 요구해 챙겼다가 되돌려 주는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자금을 뜯어내지는 못했지만 최씨가 재단을 통해 SK, 부영을 상대로 각 70~80억원을 요구하는 과정에도 안 전 수석이 관여한 정황이 제기됐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 신분을 요구하는 신분범죄로 검찰은 최씨가 안 전 수석 등 청와대의 조력으로 국내 기업 주머니를 연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개혁 5대 법안, 기업구조조정 특별법(이른바 원샷법), 서비스기본법 등 현 정부에서 재계 여망이 담긴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던 경제수석이 국내 대기업들로 하여금 최씨가 개설한 사(私)금고에 돈을 쏟아 붓도록 거든 셈이다.
이와 관련 안 전 수석은 경제전반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을 보필하고, 박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관련 부처 등에 협조를 구할 수 있는 참모로서의 역할을 한 것 뿐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 본인도 두 재단 설립 경위 관련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실현을 통한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기업인들의 문화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드린 바 있다”고 말해 재벌 갹출이 본인 의중임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헌법상 면책특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수본 구성 초기 “대통령은 형사소추의 대상이 아니다”며 직접 수사 가능성을 피해갔던 검찰도 “지금 그런 것까지 논할 단계는 아니다”며 일부 선회하는 모습을 내비췄다.
한편 검찰은 이날 최순실씨에 대해 직권남용, 사기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기미수 부분은 용역계약 외관을 빌어 더블루케이로 재단 자금을 빼내가려다 실패한 경우다. 검찰은 최씨가 재단 등을 거치지 않고 직접 재계를 상대로 금품을 뜯어내려 한 의혹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최씨가 딸 정유라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를 통해 삼성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조만간 그룹 관계자를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재단을 거치지 않고 돈이 건네졌다는 의혹을 받는 건 현재까지는 삼성 하나뿐”이라고 설명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