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편집위원]지난 주말 전국 곳곳에서는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다. 쌀쌀한 날씨에도 수능을 앞둔 수험생, 연인과 어린 아이를 안은 시민, 노인층까지 각계각층이 가세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성난 민심은 이제 폭발 직전의 화약고로 변했다. 대통령 퇴진 요구와 집회는 앞으로도 들불처럼 계속 번져갈 조짐이다.
최대의 위기를 맞은 박근혜정부는 핵심수석을 교체하는 등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지만 골수 보수 지지층마저 등을 돌릴 조짐이어서 민심을 달래기엔 이미 시간이 늦어도 한 참 늦은 것 같다.
최저기온이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29일 밤 시민 3만여명(경찰 추산 1만2000여명)이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집회를 열었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연 집회에는 어린 자녀를 데려온 가족과 연인은 물론 중학생에서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시민들로 가득 찼다.
부산, 울산, 광주광역시 등 대도시와 제주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도 300~1000여 명이 모여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인터넷 포털도 분노의 글로 가득 찼다. “치욕스럽고 자괴감을 느낀다”, “정말 나라를 빼앗긴 기분이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반기문도 필요없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박근혜 하야다”, “우린 참았을 뿐이다”, "유치원생도 뭐가 옳고 나쁜지 구분은 다할텐데","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당분간 저녁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고 밝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치솟은 시민들의 분노는 전국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욱이 다음 달 12일에는 15만명 규모의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다.
이렇게 성난 민심을 이제야 알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정무·민정·홍보수석과 함께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의 사표를 수리했다. 검찰은 사표가 수리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출국금지하고 조만간 소환 조사를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도 해법 찾기에 나섰지만 혼란스럽다. 새누리당은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을 수습하기 위해 여야가 동의하고 국민이 신뢰하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것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역대 정부에서 권력형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거론된 거국중립내각은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는 게 흠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거국내각보다는 책임총리로 가는 게 리더십 공백을 메울 최선의 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 제 87조에서 정한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 해임 건의권을 실질 보장함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런 장점이 실현되려면 대통령이 여당과 야당 모두의 지지와 협치를 이끌 책임총리에게 인사와 정책 모든 면에서 실질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작금의 위기를 돌파하려면 헌법과 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이 정국 수습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정권의 위기가 아니라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임을 박 대통령은 알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 해결책은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본인과 최씨 관계를 설명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사태해결의 지름길이다. 인적쇄신이든 거국내각이든 수습 대책은 그 다음의 일이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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