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여당이 야당이 제안한 특별검사제(특검제)를 전격 수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박근혜 대통령 탈당과 내각 총사퇴, 여당 지도부 사퇴 등 인적쇄신 요구가 비등한 가운데 정국 운영의 열쇠를 되찾으려는 일종의 '승부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은 물론 친박(친박근혜)까지 특검에 동의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방증되고 있다. 야권에선 기존 상설특검법이 아닌 '세월호 특별법'과 같은 별도의 법안 제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상설특검제는 朴대통령의 대선공약…與에 절대 유리= 26일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현행 상설특검제는 박 대통령과 여당이 결코 손해볼 수 없는 카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 야당 인사는 "왜 세월호 사건 유족들이 기존 특검제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는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4년 3월 '상설특검법' 제정 당시로 돌아가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애초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이 주축이 돼 상설특검법을 발의했으나 논의과정에서 법안이 왜곡됐다. 상설특검의 핵심이 상설기구는 배제됐고, 대통령과 여당에게 유리하게 법이 만들어졌다. 결국 '여당특검' '개악특검' '불능특검'이란 지적을 받았다. 법안 공동 발의자인 서기호 정의당 의원조차 반대의견을 개진할 정도였다.
아울러 상설특검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특검을 실시하려면 여야는 그때그때 근거 법률을 제정해야 했다. 특검 출범까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사안마다 적합한 법안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상설특검법에는 국회 의결 없이 법무부 장관만의 판단으로 곧바로 특검 수사를 시작하거나, 특검의 임명을 대통령과 여당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조항이 담겼다.
◆'최순실게이트'는 상설특검법 첫 적용 사례…특검도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무용지물= 만약 최순실 의혹을 둘러싼 특검이 실시된다면 상설특검법이 적용되는 첫 사례가 된다. 그동안 야권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과 미르ㆍK스포츠재단 특혜 의혹에 특검을 실시하자고 주장했으나 여당은 "특검 남발은 국회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행위"라며 반대해 왔다.
그런데 과거에도 현직 대통령이나 정권 실세들이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건을 다룬 특검은 유명무실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2004)에선 파견 검사들의 수사 방해에 항의하며 특별검사보가 사퇴하기도 했다.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1999), 삼성 비자금 특검(2007~2008) 등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특검에선 변호사가 현직 검사의 업무를 대신할 수 없어, 결국 파견 검사가 진술조서 작성 권한을 갖는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전 정권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대북 비밀송금 특검(2003)에선 노 전 대통령이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신청을 거부했다. 11차례의 특검 중 대통령이 조사 기간 연장을 거부한 사례는 내곡동 대통령 사저 특검(2012) 등 단 2차례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의 내곡동 사저 특검은 현직 대통령과 일가, 측근에 대한 수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수사 기간은 역대 최단인 30일이었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2001년ㆍ150일)의 5분의 1 수준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과 아들인 상은ㆍ시형씨가 소환 조사를 받았으나 이 전 대통령의 형수와 아내는 서면 조사로 대체됐다. 청와대의 자료 제출 거부로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심지어 김윤옥 여사는 특검 수사 종료 하루 전 서면 질의서를 제출했다. 김인종 청와대 전 경호처장 등 3명만 불구속 기소되는 선에서 수사는 마무리됐다.
◆특검마다 제기되는 무용론…무혐의 처분ㆍ특검자질 논란ㆍ검사 편향성= 앞선 이명박 BBK의혹 특검(2008)에서도 50일 동안 변죽만 울리는 수사가 이뤄졌다. 한나라당 후보 신분이던 수사 대상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BBK와 도곡동 땅 차명 소유 등의 의혹은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실제로 특검은 한두 차례를 제외하곤 막바지마다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다. 모든 특검은 정치적 타협으로 수사가 시작돼 지난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대북 비밀송금 특검은 수사 대상을 놓고 공방을 벌이다 시간을 허비했다.
공개적인 검증 절차 없이 3일 이내에 추천받은 특검을 임명하면서 특검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조준웅 변호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설특검법에선 기간이 5일로 늘었지만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울러 특검의 주축을 이루는 수시팀의 특별검사보나 특별수사관도 대부분 검찰 측 인사로 구성돼 공정성 훼손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野 일부 "상설특검법 아닌 별도 특별법으로 조사"…與, 특별법은 선진화법으로 봉쇄= 무엇보다 이번 특검 실시과정에서 야당이 상설특검법이 아닌 별도의 특검법을 추진할 경우 국회 문턱을 넘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권이 손쉽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특검을 가동할 것이라는 예상과 배치된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가 정치 중립성을 이유로 본회의에서 의결할 사건'에 대해 상임위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상태다. 20대 국회에선 해당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여당 소속이다. 이를 처음 다룰 소위원회 또한 여야 동수다. 무엇보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법사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안건조정위원회가 꾸려져 최장 90일까지 의결이 미뤄진다.
우여곡절을 거쳐 어떤 형태로든 특검이 본회의에서 의결되더라도, 국회는 다시 '특검 후보 추천위'를 구성해 여야 각 1명씩 2명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게 된다. 추천위에는 법무부 차관 등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이 과반이다. 대통령은 당연히 여당 추천 인사를 낙점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야권을 중심으로 물밑에선 특검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을 중심으로 특검이 아닌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 사건 수사에 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한 여권 인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야당에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의 요구가 다시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과거 특별검사 수사 사례
연도 특검 기간(수사 연장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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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 옷로비 사건 / 60일(30일 연장)
1999 /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 60일(30일 연장)
2001 / 이용호 게이트 사건 / 105일(45일 연장)
2003 / 대북송금 사건 / 70일(연장신청 거부)
2004 / 노무현 측근비리 의혹 사건 / 90일(30일 연장)
2005 / 사할린 유전개발 사건 / 90일(30일 연장)
2008 / 삼성 비자금 사건 / 105일(45일 연장)
2008 이명박BBK 의혹 사건 / 40일(10일 연장)
2010 / 스폰서검사 사건 / 55일(20일 연장)
2012 / 디도스 사건 / 90일(30일 연장)
2012 / 내곡동 대통령사저 의혹 사건 / 30일(연장신청 거부)
※총 11차례 특검 실시, 2014년 3월 상설특검법 제정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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