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요즘 SNS나 인터넷 댓글들에서는 이 말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저녁 술자리 잡담 속에서도 이 말을 내뱉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여간 예사롭지가 않다. 여기에는 늘상 들어 왔던 실망감의 표출이나 비판의 목소리를 넘어선 것, 그러니까 이제 이 나라에 대해 모든 기대를 버리려 한다는, 혹은 이미 버렸다는 체념에다 비판이라기보다는 극심한 조롱과 비아냥이 깔려 있다.
'이게 나라냐'는 개탄이 마치 노래의 후렴구와도 같이 돼 버린 지금의 상황, 그 직접적인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순실'이라는 여인과 미르ㆍK스포츠 재단 스캔들에 있을 것이다. 벗겨도 벗겨도, 캐도 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의혹들에 질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국민들의 마음이 '이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냐'는 거친 한마디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둘러싼 불가해한 일들에 이어 '최순실씨 지시에 청와대 수석실이 협력했다' '최순실 한마디에 청와대가 민간항공사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는 폭로, 급기야는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도 고치고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호통도 쳤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부인했지만 믿기 어려운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연이어 봐 온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부처의 국과장을 지목해 "이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해 좌천시키고, 1년 뒤에는 "이 사람 아직도 있냐"고 해 사실상 강제퇴직시켰다는 의혹까지 나오는 걸 보면서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개탄은 그러나 단지 '최순실 스캔들'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 비판하는 성명 냈다고, 야당 정치인 지지했다고 블랙리스트에 넣어 두고 불이익을 준다니, 이게 말이 되는 나라냐?" "경찰의 살수 대포에 맞아 죽은 사람의 시신을 기어코 부검을 해야겠다고 하다니, 나라 수준을 시골 구멍가게 수준을 넘어 막장 수준으로 몰고 가려는 거냐."
최근에 일어난 일만 꼽더라도 우병우 수석 사태에서부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강행 시도 등은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도대체 정부가, 나라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는 탄식을 토해내게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그러니까 지금의 사태의 큰 원인이면서 동시에 숱한 요인들이 쌓이고 겹친 가운데 그 '발화점'으로 작용했을 뿐인 것이다.
지난 주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인 25%를 기록한 것은 그 같은, 즉 기대는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실망은 최고치로 올라가는 국민들의 심경이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최저치를 경신하는 지지율이 더 떨어질지 반등할지 여부는 일단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한 여인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크게 달려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과 청와대는 여론만큼 이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뒤늦게 최순실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누구라도 불법을 저질렀다면 엄정 처벌받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요즘 각종 의혹이 확산되고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위기를 가중시킬 수 있다(20일 수석비서관 회의)"고 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담담한' 시각이 집약돼 있는 듯하다.
갤럽 조사에서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까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는 오늘(24일), 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 나섰다. 그간 입버릇처럼 말해온 '안보와 경제 위기' 국면에서 '국론 결집'과 '국민 단합'을 또 강조했다. 정부의 2017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여서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국론결집과 국민단합,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까. "이게 나라냐"는 말에 담긴 지독한 냉소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듯싶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