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일주일 만에 고비를 맞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대표가 단식을 정치 인생을 건 '승부수'로 삼으면서 이를 쉽게 물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면 일각에선 그동안 여권이 정치인과 세월호 유가족 등의 단식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해온 것을 거론하며, 이 대표의 단식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저혈당 쇼크에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 재방문, 곡성의 노부모도 곡기 끊어= 2일 새누리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단식에 대한 후유증으로 저혈당 '쇼크' 위험에 직면했다. 물과 식염만 섭취해오면서 건강이 악화돼 단식농성장인 국회 본관 당대표실 밖에서 응급차가 대기중이다. 야당 단독으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고, 이를 정세균 국회의장이 방기한 것에 대한 항의표시로 단식에 들어간 지 꼭 일주일만이다.
이 대표는 현재 말 한마디를 제대로 이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은 이 대표의 58번째 생일로 전남 곡성의 부친이 직접 전화를 걸어 "네가 져야 한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팔순의 노부모도 고향에서 함께 곡기를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도 이날 이대표의 단식농성장을 다시 방문해 "고집을 그만 피우라"고 당부했다. 그는 여당 관계자들에게 "강제로라도 병원에 옮겨야되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비상 대기에 돌입했다. 이 자리는 이 대표의 건강 상태를 소속 의원들에게 알리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단식= 정 의장의 사퇴를 외치며 시작된 이 대표의 단식은 이제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정국의 물꼬도 쉽게 트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으나 이 대표로선 '단식 카드'를 쉽게 접을 수 없는 상황이다. 흔들리던 당내 입지를 되찾고, 정국의 주도권까지 가져올 수 있는 단식을 아무런 소득 없이 그만둘 경우,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
저돌적이면서 꼼꼼하고 때론 즉흥적인 이 대표는 앞서 지난 26일 정 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당원 규탄대회에서 국정감사를 전면 거부중이던 여당 의원들에게 '국감 복귀'를 깜작 선언했다. 하지만 의총에선 이 같은 요청이 거부됐다. 당내 입지는 물론 향후 정치 행보에도 타격을 입은 셈이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평소 성격상 단식을 대충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영부영 마무리짓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이번 단식 과정에서 이 대표가 국가 의전서열 2위인 정 의장으로부터 먼저 사과나 유감 표명을 받아낼 경우, 향후 정국 운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당 운영을 놓고 안팎에서 일던 잡음도 당분간 사라지게 된다.
◆세월호가 발목, 예전 단식 비하 발언도 도마에= 반면 여당 대표의 단식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찮다. 야당의 전유물이던 단식을 보수 여당이 자신들의 투쟁수단으로 삼은 것이나, 과거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여당에서 현직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것 자체가 모양새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그간 단식에 대한 보수 여당의 부정적 태도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2014년 8월에는 새누리당 A 전 의원이 청문회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되는 게 아니냐. 제대로 하면, 단식은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옆자리 참석자에게 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이 발언은 한 인터넷 언론사의 카메라에 담겨 외부에 알려졌다. 야권에선 일부 여당 의원들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며 정치 이슈로 삼았다.
지난달 28일 국민의당이 논평에서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마저 비웃고 조롱하며 막말까지 일삼았던 새누리당이 김재수 장관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단식과 시위를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집권 여당"이라고 언급한 이유다.
이 대표의 과거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2014년 10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릴레이 단식에 동참한 야당 의원들에게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반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여당의 국감 보이콧과 자신의 단식이 도마에 오르자,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단식 행위) 자체가 정치 행위다. 정치는 행정과 다르다"고 말을 바꿔 논란을 불러왔다.
이런 이유에서 이 대표의 단식 관련 온라인 기사에는 부정적 내용의 댓글들이 봇물을 이룬다. '정치적 명분이 약하다'거나 '약속대로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끝까지 단식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내용들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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