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조유진 기자] 산업계가 '한진해운 사태'라는 블랙홀에 빠져 '올스톱'됐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조선업은 구조조정이 사실상 중단됐고, 철강업은 연이은 반덤핑 폭탄을 맞았지만 정부가 우군이 돼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물류대란 해결에 매몰돼 있는 사이 조선, 철강, 전자 등 현안이 시급한 다른 업종들은 뒷전으로 밀려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극심한 수주 절벽으로 경영난에 직면한 조선업계는 구조조정이 한창이지만 한진 사태가 터진 이후 정부의 지원과 관심에서 소외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아프리카 앙골라 국영석유회사인 소난골이 발주한 드릴십(이동식 시추선) 2척을 완공해 놓고 주인에게 넘기는 날만 기다리고 있지만, 인도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보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다.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채권단이 나서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한진해운 사태가 터진 이후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대우조선은 이 드릴십을 인도한 후 받게 될 1조원의 자금을 경영난 해소와 현재 진행중인 구조조정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이에 대우조선은 물론이고 조선업 구조조정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적극적이던 정부와 채권단이 물류 대란이 발생한 이후부턴 관리와 지원이 모두 느슨해 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렵게 수주를 따냈는데도 선수금환금보증(RG)을 받지 못해 선박 건조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정부나 채권단이 나서 RG 발급을 어려움 없이 발급을 했지만, 한진 사태 이후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수 개월째 발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통상 분쟁이 당장 국내 철강업체들의 수출길에 타격을 줄 정도로 가시화됐지만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습이다.통상 마찰은 정부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지만, '한진 사태'에 정신이 팔린 정부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철강 반덤핑' 사태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마찰은 정부 차원에서 나서 대응을 해줘야 하는데, 한진사태에만 매몰돼 통상 문제엔 적극적이지 않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철강 산업 구조조정도 '골든 타임'에 접어들어 업계가 본격적인 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지만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구조 개편 컨설팅 최종 보고서에 기존 설비 폐쇄 등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어 업체들간 의견이 분분한데 정작 조율에 나서야 할 정부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 압박에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수출 규제까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업계의 현실을 정부가 외면하는 모습마저 든다"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럴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각 산업군별로 당면한 현안들은 국민 경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민감하고 해결도 쉽지 않아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각 산업군별로 중심을 잡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이르면 이날 오후 운송비 채권을 담보로 한진해운에 600억원을 지원한다. 산업은행도 500억원을 추가로 투입키로 결정했다. 전현직 대주주의 사재 지원까지 총 1600억원이 긴급자금이 투입되면서 발등의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하역 비용과 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한진해운의 운명은 여전히 풍전등화의 상황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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