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공항에서 14년째 일하면서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간 적은 두 번밖에 없어요. 남들은 가족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데 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네요."
인천공항에서 보안요원 일을 하고 있는 신용쾌(46)씨는 올해도 추석연휴를 반납했다. 명절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승객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업무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족 최대 명절 추석 연휴가 다가와도 신씨처럼 근무지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인천공항은 연휴 전날인 13일부터 일요일인 18일까지 여행객이 약 98만63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특별 근무에 들어갔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연휴 기간 하루 평균 이용객은 16만4300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공항을 출입하는 직원들의 보안검색 업무를 담당하는 신씨는 1년 내내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번갈아가며 일할 뿐 정해진 휴일은 없다. 오후 6시30분부터 다음날 아침 8시30분까지 이어지는 야간근무를 한 날에야 그날 오후에 쉬는 시간이 생긴다.
신씨는 "공항 보안은 필수유지인력이 있어 경찰이나 군대처럼 항상 그 위치에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휴라고 해서 쉴 수도 없고 오히려 근무가 강화돼 인력이 더 투입되는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1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고향인 대구에 있는 부모님과 함께 명절은 보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연차가 높은 선배라고 해서 바쁜 명절 때 쉬겠다고 할 수도 없는 탓이다. 노동법 상에는 연차 휴가를 쓸 수 있게 보장해주지만 비정규직인 신씨에겐 사실상 먼 이야기에 불과하다.
특히 북한 핵실험과 국제 테러 등 굵직한 사건이 일어나면 신씨의 업무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얼마 전엔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 관계 기관에서 근무 강화 지시도 내려왔다. 공항에서 발생하는 위급한 일을 일선에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아찔한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3개월 전엔 외국인 한 명이 출국장에서 무단침입 하는 걸 몸으로 막다 병원신세까지 졌다. 신씨는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신입이 들어오면 '인간적인 삶은 포기하라'고 말한다"며 "승객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항상 긴장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신씨는 명절만 되면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신씨는 "부인이나 자식이라도 있으면 저 대신이라도 가면 될 텐데 그마저도 안 되니 항상 죄스럽다"며 "집안 사촌 형님 얼굴을 본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명절에 한 번씩 찾아뵙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청소업무를 하고 있는 정명선(49)씨 역시 추석 연휴는 다른 사람 얘기다. 정기적으로 쉬는 금요일만 제외하곤 쉬는 날이 따로 없어서다.
인천공항에서 일하며 항상 오후 1시30분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반복적인 일상도 어느덧 8년째다.
정씨는 "정말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배려를 해주지만 내가 쉬면 그만큼 동료가 힘들어지니까 조원 20명 중 명절 때 연차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일해도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잘 가지 못한다. 8년 동안 일하면서 가족들과 마음 편히 여행을 간 횟수는 3번 정도다. 그나마도 쉬는 날에 연차휴가를 붙여 다녀오는 2~3일이 고작이다.
정씨는 "연휴나 연말, 휴가철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을 통해 여행을 가는데 저흰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으니까 가끔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있다"며 "다른 친척들은 가족끼리 명절을 쇠러 오는데 우리 집은 아내 혼자 가야 하니까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인천공항엔 정씨와 같은 환경미화 업무를 담당하는 용역업체 직원이 750명에 달한다. 대부분 명절 때도 연휴를 잊고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힘쓴다.
정씨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승객들이 '우리 안방보다 깨끗하다'고 칭찬을 해주시면 피로가 싹 달아난다"며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공항에서 일하는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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