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지진에 대비한 건축물 설계나 보강 기준이 국내 실정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의 기준을 차용하고 있지만 지반특성 등을 감안하지 않고 적용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국내외 문헌조사와 전문가를 인터뷰해 지난 6월 발간한 조사결과 보고서를 보면, 국내 내진설계나 내진보강 기준에 건축물의 재료강도나 구체적인 특성, 지진발생 강도와 같은 국내 실정을 반영하지 않았다. 시설안전공단에서 마련한 내진성능을 평가하거나 향상시키기 위한 요령집이 있으나 이는 미국의 기준을 기초로 작성됐다고 보고서는 명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78년 충남 홍성지진과 1985년 멕시코 지진 후 국내에서도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불거졌다. 당시 정부가 내진설계기준을 마련하면서 미국의 기준을 기초로 했다. 가령 서울이나 부산 등은 진도 7 이상의 지진에, 강원도나 전라남도 등 지진 위험이 적은 지역은 진도 6의 지진에 대한 구조물의 안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구분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데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을 챙길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국내 지반은 단단한 암반층으로 이뤄졌지만 연약한 토사지반으로 된 미국 서부해안기준의 설계응답 스펙트럼을 적용한 점도 현실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에 대한 기준도 낮았다. 지난 5월 정부가 내진설계 의무대상 건축물 기준을 2층으로 확대하기 전까지 3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에 한해 의무화하도록 돼 있었다. 보고서는 "국내 지반 특성상 지진이 발생하면 단파장에 의한 저층 건축물 피해우려가 크다"면서 "필로티 형식의 주거용 건물이 증가하는데 필로티 기둥에 대한 하중을 강화하는 특별지진하중이 적용된 내진설계는 의무화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축물 인허가 시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이 평가하고 있어 구조물 안전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 가운데 건축인허가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싱가포르나 아랍에미리트,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건축가나 엔지니어가 건축인허가 신청서류를 검토하고 승인토록 돼있다. 또 내진성능을 보강하기 위해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으나 정확한 성능평가 없이 지원해 과도하거나 혹은 반대로 부족하게 예산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국내 연구를 통해 기준을 정한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기준을 수정보완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지반상태를 반영해 지진구역을 분류하고 설계응답 스펙트럼에 대한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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