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내년은 한국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 '무정(無情)'이 탄생한지 꼭 100년 되는 해다. 춘원 이광수는 1917년 1월1일부터 6월14일까지 126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했다. 시간이 한국 문학사에 있어 손꼽히는 '논쟁적 인물' 이광수를 다시 우리 앞에 불러세우고 있다.
미묘한 시기에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가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광수의 삶을 조명한 평전이다. 책은 이광수의 유년 시절부터 일본 유학 시절,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의 교사 생활, 다시 일본 유학 시절, 무정의 집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시절, 동우회 사건과 수감, 사상 전향과 가야마 미츠로로의 창씨개명, 친일 행위까지 이광수의 삶을 시간순으로 반추하고 있다.
기자가 고등학교 학생일 때 문학 선생님은 김소월, 김유정 등 일제강점기에 요절한 시인, 소설가들을 언급할 때마다 '잘 죽었지요'라고 했다. 당시 문인들에게 요절은 차라리 축복일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글 쓰는 재주 밖에 없던 문인들에게 당시 시대 상황은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좌절감이 커지면 포기하고 친일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도 담고 있었다.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를 읽으면서 '잘 죽었지요'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 것은 식민지 치하 지식인으로서 이광수가 느꼈을 좌절감 등이 책에 꽤 잘 드러나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광수는 13세 소년이던 1905년 여름 처음 현해탄을 건너 도쿄 유학길에 오른다. 소년 이광수에 처음 비친 도쿄의 모습은 충격에 가까웠을 것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과 달리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문호가 개방된지 이미 50년이 넘은 상태였다. 책은 당시 이광수가 받았던 충격이 소설 무정에도 투영돼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 이형식이 소년 시절 '뺑'하고 소리를 내는 '화륜선'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바로 이광수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이 책이 일본인 학자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은 함정이다. 일본어 원서 제목은 '이광수-한국 근대문학의 아버지와 친일의 낙인'이다. 저자인 하타노 세츠코 나가타현립대학 명예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 독자들은 이 책이 이광수에 대해 지나치게 호의적이라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의 거의 반을 이광수와 함께 지내왔다고 밝히고 있다. 하타노 교수는 무정을 일본어로 번역했으며 '무정을 읽는다', '일본 유학생 작가 연구', '이광수의 이언어 창작에 관한 연구' 등 이광수에 관한 수많은 연구 저작을 남겼다.
이광수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된 두 가지 사건은 무정 집필과 1937년 동우회 사건이다.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이광수는 '반일'에서 점점 '친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책은 동우회 사건 때 함께 수감됐던 도산 안창호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스승이자 의지처였던 안창호의 죽음이 이광수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실제 이광수는 1938년 초 민족운동을 모래성에, 조선총독부를 바다에 비유한 체념적 시를 썼고 이후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하타노 교수는 우리에게 뼈아플 수 있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그는 이광수 삶의 큰 전환점이 되는 무정을 쓰기 이전과 이후의 삶에 대한 연구의 진척 정도에서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1937년 동우회 사건 이후로는 선행 연구가 특히 적다며 한국에서 좀더 상세한 연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꼬집었다.
<하타노 세츠코 지음/최주한 옮김/도서출판 푸른역사/1만5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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