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그녀는 제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
엄마가 나이 먹는 일을 그친 후에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나이를 먹어 온 탓이다.
엄마보다 훨씬 늙었는데도
그녀는 자신보다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를 부를 때마다
그녀는 어린 나이로 돌아가서
옛 얼굴 젊은 나이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를 본다.
불러도 목소리가 닿을 자리가 없어서
만질 손과 얼굴이 없어서
엄마는 늘 목소리 속에만 머물러 있다.
자꾸자꾸 불러서 목청 안에만 가득하다.
엄마 부르는 소리가 허공을 헤매도
엄마는 도저히 슬퍼지지 않는 표정이 되어
늘 엄마의 자리에 있다.
그녀의 주름과 흰머리가 나날이 늘어나도
엄마는 딸과 늙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불쑥불쑥 엄마를 불러서
엄마와 딸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서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만 몰라보게 늙어 가고 있다.
■ 이 시에 등장하는 "엄마"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나 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행을 읽고 나면 참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일이 하나 있다. 살다가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아" 하고 불러 보면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아니라 젊고 상냥한 엄마가 저쪽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야 모르겠는데,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터덜터덜 축 늘어진 발걸음으로 집에 오다 보면, 그러다 집이 저 멀리 보이는 길목쯤에 들어서면, 달꽃이란 게 있다면 그처럼 아늑하게 환한 엄마가 대문 앞에 서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래서 "엄마아" 하고 입속으로 가만히 부르면 이런 말들이 도란도란 들리는 듯도 하다. 아이구우, 우리 강아지,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술래만 했어? 무릎 까졌네. 호오 하자. 얼른 씻고 밥 먹자. 그만 울고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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