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 신청 후 3거래일 만에 거래가 재개된 지난 5일. 한진해운 주가는 장 시작과 동시에 하한가(29.84%)인 870원으로 떨어졌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추가 지원을 포기하면서 결정된 법정관리행이었기에 청산이 유력한 상황이었으니 하한가에라도 팔고 나오자는 물량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 몇 십분이 지나지 않아 상황은 급변했다. 저가 매수 물량이 들어오더니 장중 한때 17.74% 상승한 146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순식간에 주가가 70%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자칫 상장폐지로 휴지가 될 수 있는 주식에 몰려드는 투자자들이 불나방처럼 느껴졌다. 당시(5일) 한진해운 주가도 차익매물이 나오며 13.71% 하락한 1070원으로 마감했다. '설마 국내 1위 해운사를 망하게 하겠어?'라는 생각에 뒤늦게 추격매수에 나선 투자자들은 낭패를 봤을 흐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든 투자자들의 결정은 오히려 현명(?)한 것으로 입증됐다. 한진해운 주가가 하한가를 풀린 이후 정부와 정치권에서 '물류대란'을 이유로 자금지원에 대한 얘기들이 쏟아졌다.
다음 날인 6일 오전 여당 정책위원장이 1000억원가량의 지원책을 언급하자 한진해운 주가는 상한가까지 뛰었다. 한진그룹 측의 추가 지원안이 다시 나오는 등 다양한 추가지원책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덕에 한진해운 주가는 7일에도 16% 이상 급등하며 16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단순히 주식시장 흐름만 보면 한진해운이 극적인 회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정부와 여당의 1000억원 지원 발표 1주일 전인 지난달 30일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당시 채권단은 만장일치로 추가 지원을 거부했다. 한진해운이 내년까지 1조∼1조3000억원, 운임이 현재보다 하락하는 최악의 경우 1조7000억원까지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추산하며 추가 지원한다고 회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당국도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하게 하겠다는 방안을 밝혀 한진해운을 청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을 시사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를 인용해 "결국 한진해운이 청산(liquidated)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업계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한진해운이 운영하는 선박의 70% 가량이 운항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정관리로 인해 망가진 영업망이 더 망가질 확률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만약 법원이 기업 청산을 결정하면 한진해운은 실질심사 없이 바로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거래소 규정상 법률로 정한 해산 사유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은 상장폐지된다. 설사 법원이 회생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대규모 감자를 할 확률이 높아 투자자들의 손실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5일 개장 초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이후 물류대란 해소를 위한 지원안이 쏟아져 나오면서 주식시장은 한진해운 주식을 두고 한바탕 투기판이 벌어졌다. 5일 하루만 한진해운은 2억3000만주 이상이 거래됐다. 이는 한진해운 총 발행주식수보다 많은 숫자다. 거래대금은 2600억원을 넘어 삼성전자 거래대금에 육박했다.
이렇게 한진해운 주식을 거래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한진해운의 회생에 베팅한 것은 아니다. 단기 차익을 노린 초단타 세력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투기세력이 판치도록 만든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가 '물류대란'에 이어 '투자대란'까지 유발한다는 오명은 피했으면 좋겠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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