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 경운기는 어떻게 우는가

시계아이콘01분 35초 소요

그 집 할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었다./할아버지, 점심 때 집에 왔으나 할머니가 아직 오지 않아/대강 챙겨 자시고 다시 부지런히/경운기 몰고 밭으로 나갔다.//할머니, 아랫마을 갔다가 부랴부랴 집에 와 보니 에고, 이 양반/맹물에 밥 말아 그냥/밥 떠 넣고 장 떠 넣고 한 눈치. 할머니 못내 속이 상해서/쯧, 쯧, 평소처럼 일 거들 요량으로 한참 걸어 밭으로 나갔다.//할머니, 와락 달려들어 영감! 영감님을 얼싸안아 일으켰으나/119 구급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숨을 거두어 묻은 흙 묻은 손.//"오늘 아침엔 경운기 시동이 참 잘 걸리네요." "그래, 기분이 좋구만."/별다른 뜻이 없어도 오래 아프게 된 이 말/송사에 답사. 상가엔 꼭 상복을 입은 이별장면, 별사가 따로 있다.//무쇠팔 경운기 모는 소리도/먼 길 소실점처럼 이랴, 이랴…… 멀어져간다.


 이렇게 이야기 잘 하시는 어른을 보았나. 저 칼같은 기승전결이 어김없이 사람을 사로잡는다. 문인수의 '경운기 소리'라는 시다. 경운기 몰고 나가 일하시다가 점심 먹으러 들어왔는데 외출한 할머니가 아직 귀가하지 않아 혼자 밥을 차려먹은 할아버지. '기'는 참 평범한 일상이다. 무슨 얘길 하려 저러시나 하는 기분으로 만나는 도입부다.

 '승'은 '기' 상황을 몰고 간다. 로미오 줄리엣처럼 이번엔 할머니가 돌아와서 보니, 영감님이 혼자 점심 드시고 다시 일하러 나가셨다. 아이고. 미안하고 안타까워 서둘러 할아버지 계신 밭으로 일 거들러 나간다. 둘이 사는 촌로부부지만 그래도 정겹고 아름답다. TV '여섯시 내 고향'쯤에서 보이는 얼굴들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까지였다면 리포터의 수다 몇 줄 듣고 돌아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반전이다. 예고도 하지 않고 바로 급진전되는 바람에 더욱 놀랍다. 할머니가 바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얼싸안아 일으키는 장면이다. 구급차가 왔을 땐 숨을 거뒀다. 이 '전'의 상황이 되면, 아까 점심 못 차려준 일이 얼마나 애통해졌는지 느껴진다. 혹여 그것이 저승길을 재촉했는지 할머니의 자책 또한 글자 밑에서 한스럽게 뚝뚝 떨어져 나온다.

 '결'은 또 하나의 반전으로 아리는 마음을 더욱 키운다. 아침에 노부부가 나눈 대화이다. 경운기 시동이 참 잘 걸린다고 할머니가 말해줬더니 "그래, 기분이 좋구만." 했던 그 말. 이제 경운기만 바라보면 그 말이 생각나고, 영감님이 눈물로 터져나올 판이 됐다. 그놈의 경운기가 영감님을 보내려고 그토록 시동이 잘 걸렸던가. 그 '소리'가 새삼 원망스럽다. 아니, 영감님이 세상 하직할 걸 부지불식간에 예감하면서 나더러 안심하라고 "그래, 기분이 좋구먼" 했던가. 그 소리 좋던 경운기를 소처럼 이랴 이랴 몰고 밭고랑 누비느라 저승 흙 파는 것인 줄도 몰랐던가. 할머니 통곡 속에서 경운기 소리 듣는 옆사람도 눈물 훔칠 지경이다.


 문인수 시인은 아마도 시골의 어느 상가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저 할머니의 곡소리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상복을 입고 "그래, 기분이 좋구먼"의 할아버지 마지막 말씀을 되뇌며 눈물 쏟아내는 어수선한 별사를 시의 행간 속으로 쟁여넣었을 것이다. 사는 일, 혹은 그 뒤의 일. 이 일 말고 또 뭐가 있는가. 서울서는 들을 수도 없는 경운기 소리가, 한번에 드르륵 시동 걸린 그 소리가 귀에 자꾸 들린다.


빈섬(이상국 디지털뉴스룸 부국장) isomis@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2009:48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전 세계에서 K푸드에 대한 수요가 식을 줄 모른다." 미국의 경제 뉴스 채널 CNB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 식품의 글로벌 확산세에 대해 이같이 조명했다. 이 방송은 특히 라면을 K푸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품목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K팝과 한국 드라마에서 라면이 자주 노출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물가 인상과 생활비 상승도 비교

  • 26.01.2007:16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7시 미국 뉴욕 맨해튼 32번가 K타운. 한국 치킨 브랜드 BBQ 매장은 '치맥'을 즐기려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테이블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저녁 시간을 즐겼다. 치킨뿐 아니라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한국 메뉴를 함께 주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메디슨 씨는 "학교 근처

  • 26.01.1915:08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K웨이브 글로벌 현장 점검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

  • 26.01.1914:08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처럼 금방 꺼질 수 있습니다. 지하수처럼 '일상 문화'가 계속 흐르도록 해야 K 브랜드와 산업의 생명력을 3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일열 전 파리문화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K브랜드의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콘텐츠는 강력한 진입로가 될 수 있지만, 휘발성이 크다"며 "어느 순간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썸

  • 26.01.1914:08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현지 한식당 대부분이 중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