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로버섯이 있다.
얼핏 보기엔 흙 감자를 닮았지만, 캐비아, 푸아그라 등과 함께 고급 서양 음식에 쓰이는 대표적인 재료다. 7년 이상을 흙 속에 파묻혀 자라야 채집이 가능할 정도로 귀해서 ‘땅속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수퇘지가 발산하는 페로몬과 비슷한 냄새 때문에 이 버섯을 찾아내는 데 암퇘지가 이용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개가 그 역할을 대신할 정도로 독특한 식재료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작물, 감자가 있다.
대표적 구황작물 중 하나인 이 작물의 프랑스식 이름은 ‘땅속의 사과’다. 16세기 신대륙에서 유럽으로 전파되던 당시에는 공교롭게도 ‘흰 송로버섯’이라고도 불렸다. 감자를 처음 본 스페인 정복자들이 송로버섯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척박한 조건에서도 잘 자라서 봄에 심으면 한여름이 오기 전에 수확이 가능하다. 수확한 알갱이가 아주 작거나 너무 크면 개나 돼지의 사료로 사용하거나 그냥 버리기도 한다. 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산 검정 송로버섯의 경우 1킬로그램에 수백만 원을 웃돌 정도로 비싸서, 예부터 가진 자들의 호사취미를 위한 음식재료로 자리잡아왔다. 주로 가루를 내거나 가늘게 썰어 향신료로 쓰는데, 때론 손톱 크기로 얇게 저며서 날로 음식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감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서민 음식의 재료다. 수확철이 갓 지난 요즘 소매시장에서 킬로그램 당 천 원을 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다. 갖은 양념에 굽고 조리고 튀겨서 다양하게 조리하거나 앙금에서 얻은 녹말을 이용해 쫄깃한 식감의 감자송편이나 옹심이 같은 음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가장 간편한 방식은 그냥 찌거나 삶아서 먹는 것이다. 고흐의 초기작 『감자 먹는 사람들』에 묘사된 감자도 그러하다. 고흐는 말했다.
“작은 등불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를 향해 내민 바로 그 손으로 농사를 지어 정직하게 음식을 얻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분명히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감자가 농민의 환영을 처음부터 받지는 못했다. 18세기 들어 농민의 주된 식단으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시 유럽 농업의 주된 작물인 밀이나 귀리 같은 작물에 비해 감자는 동일한 경작 면적에서 2~3배나 더 많은 사람들의 식량원이 될 수 있었다. 지주들은 농민에게 싼 감자를 먹게끔 하고 밀과 호밀, 귀리, 보리 같은 작물들은 시장에 내다 팔고자 했다. 감자의 뛰어난 생산성 덕분에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정부도 ‘감자로 빵을 만들 수 있다’는 엉터리 선전까지 해가며 감자농사를 적극 권장했다.
정작 농민들은 감자 재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도 곡물을 먹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비록 귀족과 지주들이 먹는 흰 빵은 아닐지언정 검은 빵이라도! 글루텐 성분이 없는 감자로는 어떻게 해도 빵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농민들은 감자 재배를 거부했다. 그러나 지주들의 집요한 강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 시기 이탈리아 사제 겸 생물학자인 지오반니 바타라는 “감자는 짐승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아주 좋은 음식”이라며 재배를 독려했다. 농지를 임대하는 경우 일정 구역에 감자 농사를 짓도록 계약서에 명시하는 지역도 있었다. 그렇게 재배된 감자는 거의 대부분 농민의 초라한 식탁에 오르거나 도시 빈민층의 허기진 뱃속으로 향했다.
새로운 작물이 초래한 새로운 생산관계는 마침내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1845년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이 대표적이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2년 연속으로 감자 전염병이 번졌고, 밭에서 시커멓게 감자가 썩어 들어가는 가운데 농민들은 굶주려야만 했다. 눈 앞 들판에 가득한 밀과 귀리, 보리, 호밀 같은 작물은 오직 지주의 소유였고, 영국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이었다. 무능한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 대기근은 아일랜드 농업사회를 무너뜨렸다. 800만명에 달하던 아일랜드 인구는 불과 2년 만에 무려 3분의 1이 죽거나 나라를 등졌다. 자신의 손으로 정직하게 땅을 일구던 농민들이 굶주림 속에서 떠밀려 나간 그 땅에 대지주들은 영국에 내다팔 양털을 생산하는 양떼 목장을 대규모로 조성했다.
멀리 안데스 산맥에서 건너온 감자가 유럽 농업사회에 가져온 생산성 증대의 과실은 과연 누구의 몫이었을까. 한여름의 끈질긴 무더위, 대한민국 감자 재배 1번지인 강원도를 지나다 들른 조그마한 식당에서 감자옹심이를 맛있게 먹었다. 그때 문득 송로버섯과 감자의 같고도 다른 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다, 음식에도 정치가 있다.
최강문 작가, 『골목안 통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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