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궁을 만들어낸 '변함없이 고요한 마음'의 비밀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한국 양궁선수들의 평정심은 올림픽이 공인한 세계 최강이다. 활의 기본은 화살을 중심에 꽂는 재능과 솜씨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같은 능력을 발휘하고 같은 결과를 내는 일은, 평정심의 문제다. 연암 박지원은 하룻밤에 아홉번 물을 건너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평정심의 평(平)은, 보통 때의 심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정(靜)은 외부의 시끄러운 조건들을 물리치고 고요한 기운을 유지하는 것이다. '평'은 특별한 시기인 지금을 보통의 시기로 만드는 심력이고, '정'은 의외의 상황과 문제적 위기를 담담하게 처리해내는 제어력이다.
평상의 시기에야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이 그리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위태로운 때를 맞아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오랜 훈련을 통한 내공이 필요하다. 기습적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의외의 소음, 그리고 지구 반대편 경기장의 뜻밖의 바닥들, 낯선 분위기들. 이런 것들이 모두 마음을 흔들고 영혼을 긴장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변수들을 가능한 한 예측하여 훈련 매뉴얼에 넣고,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정신력을 갖춘 결과가, 대한민국 신궁이다.
오래전 내가 가장 힘겨울 때, 한 선배는 내게 가만히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평상심을 가지렴." 평상심을 가지렴. 그 말을 듣는 순간 격한 반발부터 떠올랐지만,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저 말을 내 마음에게 지령하기 시작했다. 고르고 한결같은 마음, 평상심. 고르고 고요한 마음, 평정심. 내 깊은 속에는 그때 쿨럭거리며 고요히 주저앉았던 불의 드래곤 하나가 아직도 들어있는 듯 하다. 그 화룡(火龍)을 떠올리면, 세상의 어떤 격랑 속에서도 고요해질 듯 하다.
아무 것도 개의치 않는 영혼의 귓가로 미친 바람이 분다. 활과 한 몸이 된 기보배가 가만히 화살을 당기는 중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