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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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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취한 말들이 삶 속에 흘러가는 풍경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한 방송에서 이 기묘한 이름의 특강프로그램을 내놨을 때, 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른? 이렇게 되물으면서도 신선한 충격 같은 게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말이 제대로 종지(終止)되지 않고 의미 진행의 완결성도 떨어지는 이 단편의 문장은 사실 '해석'이 열려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는가. 준비나 자각 없이 어른이 되버린 스스로에 대한 심문이 되기도 하고, 어쩌다 어른 대접을 받게 되었는가, 속은 아직 어른이 되지도 못했는데 남들로부터 어른 대접을 받으니 어리둥절한 기분이 드는 것을 표현한 말이 되기도 한다. 어른이긴 어른이지만 제대로 어른 노릇이나 구실을 하는 건 어쩌다 한번씩 있는 일이라는 핀잔도 숨어있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저런 기이한 헤드라인을 달게된 이유를 살짝 내비치고 있다. '어른 걱정해결, 특강테라피'라는 것이다. 지친 어른들의 걱정을 치유할 프리미엄 특강쇼라고 풀어서 말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어른이 되다보니 그 '격'에 맞게 행동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어른들에게 내실을 기할 수 있게 하는 배려를 하겠다는 얘기다.


[낱말의습격]어쩌다 어른? O tvN 방송의 특강쇼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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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콘텐츠'를 갖추지 못한 어른들을 배려하는, 저 방송사의 강의교실이야 나무랄데 없이 기특한 일이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표현에는, 부실한 어른에 대한 공개적인 견적이 숨어있는 게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모양만 어른이지, 속은 전혀 어른이 되지 못한, 성장정지의 피터팬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에 대한 절묘한 풍자의 냄새도 있다.


콘텐츠를 갖추면 어른이 되는가. 품성을 혁신하고 사회성을 돋우면 어른이 되는가. 어른이 된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인가. 제 자식을 끔찍히 사랑하고 제 가족을 챙기는 일은 어른의 모양새인가 혹은 아닌가. 제 아비나 어미는 잊어버리고 세상에 나가 다른 상전에게는 아낌없이 굽신대는 행위는 어른이 할 짓인가 혹은 아닌가.


그저 무슨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와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로서의 어른 노릇, 윗사람으로서의 어른 노릇, 이웃에 대한 어른 노릇, 세상에 대한 어른 노릇, 그 모든 게 다 결여되어가고 있는 요즘에, 어른 콘텐츠가 과연 역사 지식이나 맥락 몇 개 더 알고 고사성어나 리더십 교본 따위를 습득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다 어른이 된 존재로,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내면의 빈 곳들을 훔쳐보며, 뭐가 어른의 표지인지도 뭐가 중한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나이의 빈 간만 서둘러 채워가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기묘한 제목 하나의 심문.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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