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스토리 - 동네 총각을 상사병으로 죽게 하고 예쁜 첩들을 절망시킨 그녀는 정작...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황진이가 은밀히 육체를 경멸하면 할수록 그녀는 도도하고 더 아름답게 보였고, 사내들은 더 속이 탔다.
첫 사고는 15세 때 일어난다. 이웃의 총각 하나가 스토커가 되어 늘 담장을 기웃거린다. 하루는 용기를 내서 말을 걸려고 황진이에게 다가갔다가 심장을 얼게 하는 그 고고한 아름다움과 서늘한 눈매에 입이 딱 붙고 만다. 돌아와서는 드러눕는다. 그 부모가 찾아와 살려주는 셈치고 한번만 위로해주라고 했지만 진이는 듣지 않는다.
얼마 후 그는 상사병으로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듣고 황진이는 큰 충격을 받는다. 대체 내 얼굴, 내 육신이 뭐라고 젊은 사람이 저렇게 자진(自盡)한단 말인가? 아름다움이 사람을 죽인다면, 아름다움은 죄악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남자의 상여가 지나가다가 황진이의 집 앞에 딱 멈춰섰다. 죽어서까지도 놓지 못하는 저 어리석은 집착. 그 집 사람이 와서 황진이의 옷가지를 얹어줘야 갈 것 같다고 말하자, 황진이는 저고리를 하나 꺼내준다. 관이 그제서야 움직인다. 상여꾼들이 죽은 총각의 원혼을 달래느라 연극을 한 것일까?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까닭없이 생겨난 내 몸뚱이의 요기(妖氣)가 세상을 어지럽혔구나. 갓 피어나는 기생에게 이 사건은 트라우마가 되었으리라.
그녀의 아름다움은 남자들만 괴롭히는 건 아니었다. 유수 송겸이 술자리를 열었는데 황진이가 나왔다. 풍류에 일가견이 있었던 송유수는 그녀를 보자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다!”하고 신음같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황진이가 왔다고 하자, 송유수의 첩이 궁금해서 문틈으로 그녀를 엿본다. 그 틈새로 뿜어나오는 아름다움. “저렇게 예쁠 수가...이제 내 신세는 조졌구나”하면서 아우성을 지르며 술자리 가운데로 뛰쳐들어온다. 곁에 있던 종들이 기겁을 하고는 함께 뛰어와 밖으로 모셨지만 이 여자는 실성한듯 다시 뛰어들어와 술판을 뒤엎는다.
송유수는 놀라 일어서고 손님들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빠져나간다. 송겸의 첩을 그토록 절망케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일을 당하고난 뒤에도 송겸은 다시 어머니 수연을 맞아 황진이를 부른다.
황진이에 관한 진술자들은 그녀가 ‘남자같았다’는 말을 한다. 화장을 안한 것이 더 곱다는 조선 최강 ‘생얼미인’ 황진이가 남자같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용모와는 달리 성격에서 호방하고 거리낌없는 태도가 있었다는 얘기이리라.
내숭 안 떨고 약한 척 하지 않고 순진무구한 척 하지 않는 당당하고 씩씩한 기색. 조선 남자들은 황진이에게서 그런 기운을 느낀 모양이다. 황진이는 지조를 중히 여기고 순결을 프라이드로 삼는 ‘일편단심 기생’이 아니다.
그녀는 늙은 고관대작의 첩실로 들어가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자 하는 출세욕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황진이는 오히려 철저히 육체적인 사랑을 게임처럼 즐기며 사내들에게 한치도 꿀리지 않는 일대일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논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조선의 기형적 ‘사랑시스템’에서 황진이만큼 철저히 기생다운 기생도 없다. 꾸밈도 없었고 거침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시도 사랑게임의 일부이며 음악도 육체도 모두 놀이의 일부이다. 이토록 예쁘고 잘 노는 여자이기에, 황진이는 후대의 임제까지도 그녀의 무덤 앞에서 찔러보는 ‘기생의 로망’이 된 것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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