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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로드④]내 더위를 뺏다니 이런 무뢰한, 아니 '물회'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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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현·정동훈, '혀'로 취재하다 - 어부들이 배위에서 먹었던 싱싱·시원한 맛, 물회의 매력

[보양로드④]내 더위를 뺏다니 이런 무뢰한, 아니 '물회'한 놈 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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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는 어부의 밥이다. 배 위에서 처음 만들어 먹었다. 회와 각종 채소, 고추장·된장 양념을 버무려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제대로 된 식사보다는 훌훌 넘겨 한 끼 때우기 위해 물을 넣었을 것이다. 얼음을 동동 띄운 물회 한 그릇이면 푹푹 찌는 여름날 땡볕도 견딜 만 했으리라.

물회는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녹초가 된 어부의 끼니였다. 과거 어부들은 풍어를 이룰 때 젓가락질해 음식을 먹을 새도 없이 바빴다. 배위에서 끓이고 삶고 구울 수 없었고 육지 음식은 금방 상했다. 큰 그릇에 펄떡거리는 흰살 생선과 신김치, 채소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듬뿍 푼 후 시원한 물을 부었다. 숟가락으로 퍼먹고 사발째 후루룩 마셨다. 만선 위 끼니치고 단출했지만 피로에 찌든 몸을 추스르기에는 최고였다. 바닷물 탓에 느끼는 갈증을 풀었고 생선살은 든든한 에너지원이 됐다. 이렇게 어부들의 끼니였던 물회는 이제 양식업과 운송수단의 발달로 도시민의 여름 갈급증을 푸는 보양요리가 됐다.


◆물회, 지역마다 다르다 = 물회를 식당에서 처음 판 곳은 경북 포항이었다. 1961년 포항 덕산동에서 허복수 할머니가 물회를 팔기 시작했다. 선원이었던 남편에게서 물회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술로 거친 뱃일을 견디던 시절이었다. 당시 허 할머니의 남편은 선상에서 술을 마신 뒤 물회를 해장용으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허 할머니도 처음 물회를 내놓으며 해장에 좋다고 알렸다. 이 지역에서 물회는 '술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채소를 많이 넣어 수분을 보충하는데 좋고 시원해서 속이 풀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회는 재료를 제한하지 않는다. 가자미, 광어, 우럭, 쥐치, 도미 등 흰살 생선이 어울리지만 해삼, 멍게, 오징어, 전복, 성게소 등 어떤 해산물이든지 물회로 먹을 수 있다. 비린내 나고 살이 무른 생선만 피하면 된다. 양념은 고추장이나 된장에 식초, 다진 마늘, 깨, 참기름 등을 버무려 만든다. 동해안에서는 고추장을 많이 쓰고 제주도와 남해안에서는 된장도 쓴다. 포항, 영덕 등 경상북도에서는 양념에 회와 채소를 비벼서 한참을 즐기다 생수를 넣어 물회로 만들어 먹었다. 강원도에서는 물회 국물을 미리 만들어 싱싱한 해산물에 부어 먹는다. 집에 따라 과일 등을 갈아 넣어 국물의 새콤달콤한 맛을 보충하기도 한다. 전라남도 장흥에서는 된장을 풀어 맛을 낸 물회가 유명하다.


[보양로드④]내 더위를 뺏다니 이런 무뢰한, 아니 '물회'한 놈 된장 물회


쓰는 재료도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속초, 양양 등 강원도에서는 오징어와 한치를 넣는다. 부산에서는 빨간 고기라고 불리는 눈볼대, 거제는 멸치 물회가 유명하다. 제주도에서는 계절에 따라 특산물인 자리돔을 쓰기도 한다. 소설가 황석영은 음식에 관련된 얘기들을 담은 '맛과 추억'에 제주도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리돔 물회 만드는 법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자리는 비늘을 긁어내고 어슷어슷 썰어서 된장과 깻잎에 싸서 먹고 초장에 찍어 강회로 먹기도 하지만,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칼로 다져서 부추, 미나리, 깻잎, 풋고추, 오이 등속에 된장 고추장과 갖은 양념을 하여 생수를 부어 얼음을 띄운 '자리 물회'를 만들어 먹는다. 토속대로 하자면 머리와 꼬리도 자르지 않고 간간이 뼈가 씹힐 정도로 칼로 난도질 쳐서 산초잎을 넣어야 한다"고 썼다. 서울서도 뼈째 씹히는 자리 물회의 맛을 볼 수 있을까. 낮 최고 기온이 34도를 웃돌았던 지난 3일 시원한 물회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명동의 한 제주 음식점을 찾았다.


◆자리의 빈 자리가 아쉽지만 = 자리돔은 여름이 제철이다. 하지만 제주도 특산물인 만큼 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맛을 보지 못하는 날도 있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자리 물회가 가능하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오늘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안으로 자리돔과 함께 제주식 물회를 대표하는 한치 물회 한 그릇을 청했다.


한치는 물회와 잘 어울린다. 우선 식감이 좋다. 싱싱한 한치의 쫄깃한 식감은 물회 속에서도 온전히 살아 있다. 국물을 마시고 오이 등을 맛본 뒤에도 한치는 특유의 고소한 맛을 전했다. 비린내가 심하지 않은 한치는 다른 재료의 맛도 죽이지 않았다. 양념장이 다소 과했지만 식감을 즐기는 한치의 맛을 해치지는 않았다. 국물은 쉼 없이 목으로 넘어갔다. 물회 특유의 산뜻함과 시원함 덕분이다. 싱싱한 한치의 쫄깃한 식감과 향긋한 채소, 맵싸한 국물이 어우러진 한치 물회로 여름 땀으로 뺀 수분을 고스란히 다시 보충했다.


[보양로드④]내 더위를 뺏다니 이런 무뢰한, 아니 '물회'한 놈 한치 물회


잡어를 넣은 물회도 주문했다. 학꽁치와 물가자미(미주구리)가 들어간다고 했다. 대개 물회를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면 회의 고유한 맛 보다는 새콤한 양념의 자극적인 맛이 먼저 느껴진다. 고급 어종을 물회로 먹기는 아까운 이유다. 요사이 인기를 얻고 있는 화려한 재료들이 들어간 물회는 물회 고유의 정서와 멀어져 있다.


이 물회에 들어간 학꽁치와 물가자미는 '막회'라고 부르는 한국식 생선회의 재료이기도 하다. 이 회의 맛은 두툼하게 썬 일본식과는 다르다. 얇게 썰어 씹는 맛을 즐기기에 제격인 생선이다.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은 '미각의 제국'에 "씹는 맛으로 치자면 막회가 최고다. 뼈째 총총 썰어서 채소와 함께 비벼 우걱우걱 씹는 맛. 이런 막회는 와사비 간장으로 먹으면 맛이 안 난다"고 썼다. 그래서 막회에 쓰는 생선들은 맛이 강한 물회에 잘 어울린다. 물회는 본디 값싼 재료 넣고 뚝딱 만들어 먹는 노동의 음식이었다. 막회와 각종 채소를 넣은 물회를 볼 미어지게 넣고 씹으니 고된 뱃일에 지친 어부의 한 끼가 느껴졌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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