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불황에 부동산으로 눈 돌려
컨소시엄 참여 방식서 직접 낙찰로
택촉법 폐지로 택지지구 땅 몸값↑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증권사들이 전국 택지지구의 토지 입찰에 직접 참여하는 건 업계의 불황과 무관하지 않다. 증권업계는 최근 주수입원인 수수료를 경쟁적으로 인하하고 있는 데다 수익이 큰 해외 상장이나 기업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는 외국계 증권사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돈이 되는 부동산 업무에 나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 동안 증권사는 건설·시행사들이 토지 입찰에 참여할 때 투자자 자격으로 컨소시엄 등으로 참여하거나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부동산 관련 투자분석이나 개발과정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면서 직접 토지를 낙찰 받아 전매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공공택지 공급은 대부분 전산추첨방식으로 진행되다보니 관련 법인만 만들어놓으면 합법적으로 택지를 확보할 수 있다. 증권업계는 물론 주택업계에서도 계열사를 동원하거나 특수목적법인(SPC) 수십개를 만들어 입찰에 참여하는 관행이 만들어진 이유다. 입찰을 하는 법인이 많을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간 역할을 하던 증권사들이 직접 토지 입찰에 나선 건 그 만큼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무엇보다 수십년 동안 개발이 이뤄지면서 가용한 택지가 크게 줄면서 귀해졌고 주택사업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주택업체들은 확보경쟁이 치열해졌다. 2014년 정부가 신도시 조성 등 대규모 택지지구 개발의 근거가 된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 추가 택지개발을 중단한 것은 더욱 택지확보 경쟁을 부추겼다.
주택업계의 토지확보 경쟁은 거의 '전쟁' 수준이다. 지난 5월 한 증권사 자회사가 따낸 택지에서도 그렇지만 대부분 수백대1의 경쟁률을 보인다.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한 경기 시흥목감지구 공동주택용지 B9블록 입찰에 총 304개 건설사가 뛰어들었다. 시흥장현지구의 공동주택용지 B3블록은 526대1, B4블록은 516대1에 달했다. 수도권 뿐 아니라 강원 원주기업도시 등 지방도 최소 100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산·분당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주도해 조성하는 택지지구는 대규모 계획도시로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다른 사업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면서 "인·허가 리스크가 없어 사업 추진이 예측 가능할 뿐 아니라 공사를 진행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 택지지구 공급이 끊긴 만큼 일단 땅만 확보해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택지는 낙찰 후 가격이 상승해 전매를 통해 단번에 수십억원을 벌어들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택지낙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법인을 빌려와 함께 참여했는데 들러리업체가 낙찰 후 당초 약속한 것보다 과다한 요구를 해 소송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사가 입찰금 등 자금을 제공했지만 사업성이 좋은 곳에 낙찰되자 돈을 빌려 직접 사업을 하겠다며 말을 바꾸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문제점을 막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추첨 방식으로 공급되는 공공택지 내 공동주택용지의 전매를 2년 간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탁 또는 프로젝트 금융투자(PFV) 방식의 주택건설사업은 전매를 허용하고 있고 부실징후기업, 부도 등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질 경우 전매를 허용하도록 예외조항을 두고 있어서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추첨방식의 택지 공급은 대형사와 중견사 등 다양한 사업 주체들이 얽혀 있고 공정한 경쟁 방식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주택건설사업의 전문성이나 운영 능력 등이 없는 금융권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처럼 사업에 나설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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