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기관 수장 정치권 압박…퇴임·정권 교체 후엔 '부메랑'으로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강만수 전 산은금융그룹회장 겸 산업은행장과 민유성 전 산은 회장이 검찰의 수사대상에 이름을 올리면서 전직 산은 회장의 수난사가 금융권에서 새삼 화제다. 과거 산은 회장이 총재라고 불리웠던 시절, 산은 총재 출신들이 줄줄이 구속됐던 '총재의 저주'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강만수 전 회장은 대우조선해양과 유착해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일 강 전 회장의 송파구와 강남구 소재 사무실 2곳과 자택, 강 전 회장이 운영하는 업체 두곳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남상태ㆍ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의 경영 비리에 강 전 회장이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유성 전 회장은 재직당시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성진지오텍 주식을 시세보다 싸게 매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시민단체가 고발한 이 사건을 강 전 회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날 조사2부에 배당했다
산업은행 전직 수장들은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거나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한 사례도 많다.
산은 회장을 그만두고 나면 검찰 수사가 뒤따르는 것은 정치적 이유도 작용했다. 산은금융그룹 회장 자리는 우리나라 최고 정책금융기관의 수장으로서 경제정책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를 많이 다룰 수 밖에 없다. 현직에 있거나 힘이 있을 땐 그냥 지나가지만 퇴임하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이같은 민감한 정책결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강 전회장의 경우 이명박 정권의 공동창출자라는 세간의 평을 들을 정도로 권력과 가까웠다. 또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을 정도의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당시 산은회장이 추진하는 일은 '안되는 일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가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은행 수장들이 이같은 검찰 수사를 받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이근영 산은 총재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불법 대출했고 이는 김대중 정부 '대북 송금' 사건의 발단이 됐다. 이 총재는 결국 특검 수사를 통해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뒤이어 수장자리를 넘겨받은 엄낙용 전 산은 총재도 국정감사 당시 돌출발언 등을 이유로 8개월의 짧은 임기를 끝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2001~2003년 산은을 맡았던 정건용 전 총재도 대검 김재록씨 로비와 관련해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창록 총재도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청탁을 받아 신정아 씨가 일하던 성곡미술관에 산은이 뇌물성 후원금을 내도록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부실 경영 또는 경영상 판단 미스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사례도 있다. 민유성 전 산은 회장은 파산 직전의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 했다가 정치권의 질타를 받고 2011년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강만수 전 회장도 민영화 추진 당시 고금리 예금을 무리하게 많이 팔았다는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다가 결국 자진 사퇴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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