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의 상처를 겪은 유럽은 분열을 막고 통합된 공동체를 지향하기 위해 1958년에 유럽경제공동체(EEC)를, 1993년에는 이를 확대 개편한 유럽연합(EU)을 창설했다. 제도란 항상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이에 상응한 부정적인 면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이번 브렉시트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항의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무역체제와 냉전체제 종식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통합화의 일환으로 산업의 불균등화와 이민자 수용 정책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영국 불만계층의 의사표시다.
이러한 불만은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 대선 과정에서도 '트럼프 현상'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이는 곧 신고립주의를 낳고 있다. 이는 세계질서를 자유무역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고립주의를 강조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는 양적완화의 통화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20일(미국시간) CNBC와 마켓워치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글로벌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2015년 현재 51조4000억달러에서 2020년 75조3000억달러(8경6000조원)로 46%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S&P가 1만4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5곳 중 2곳 이상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S&P와 영국의 경제 일간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첫 주 현재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기업이 100곳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최근 미국에서는 고용과 물가 등 경제지표가 브렉시트 이후 호조를 보이면서 연내 기준금리 인상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금리인상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금리 인상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크렉시트(Crexit)이다.
크렉시트란 신용시장(credit market)에서 투자자들이 일시에 이탈(exit)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각국의 저금리 기조와 브렉시트 이후 풍부해진 유동성 덕분에 기업들의 부채가 늘어났으며 이것이 각국의 기준금리인상시 '채무폭탄'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중앙은행(BoJ)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마이너스 금리 채택과 양적완화의 통화정책으로 세계적인 초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넘쳐나는 유동성속에 투자자들이 안정자산인 회사 채권에 투자를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상되거나 경제여건이 악화되면 채권시장에서 대거 자금이 이탈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그로 인한 금융공황이 초래될 것이다.
S&P는 우선 실질성장률과 물가상승으로 부실기업이 서서히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 전망했지만, 최악의 경우 금융기관이 회사채를 한꺼번에 매도해 줄줄이 신용시장에서 이탈하는 '크렉시트'가 발생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금융 시장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도 녹록지 않다. 선박·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의 여파로 고용저하로 이어지고, 자동차나 반도체와 같은 특정산업만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서울의 전세값 하락으로 일부 역전세란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상장기업들 중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즉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이 매년 30% 정도이고, 3년 연속으로 이자보상배율이 1에도 못 미치는 좀비기업은 15%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현 경제상황에서 크렉시트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당국은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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