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아이의 친구 엄마가 보자마자 "**카페 앞에 가 봐. 기삿거리 있던데"라며 말을 걸어왔다. 기삿거리란 말에 귀가 쫑긋 섰다.
"왜요? 무슨 일 인데요?"
"은행 앱 깔면 생과일주스 쿠폰 공짜로 준다고 하는데, **여고 애들 몇몇이 줄 서 있어. 아직 미성년자인데…. 유해업소가 아닌 은행이라 괜찮은 건가? 그래도 고등학생들한테 호객활동을 하는 건 그렇지 않아? 교복까지 입고 있어 누가 봐도 학생들인데 말이야."
순간 '이 동네까지 올 것이 왔구나. 이젠 기삿거리도 안 되는 일인데…'란 생각을 했다. 은행들은 최근 하나멤버스, 신한 판 클럽, 위비멤버스 등의 통합 멤버십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유치 영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점 앞에 파라솔을 펴 영업을 하는 건 보통이고 퇴근 시간 이후 음식점, 술집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회원 가입을 읍소하는 은행 직원들도 많다.
은행들이 이처럼 멤버십 회원 유치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고객을 붙잡기 위해서다. 계좌이동제의 시행으로 주거래은행 변경이 쉬워지면서 최근 은행가엔 고객 확보령이 떨어졌다. 초저금리란 각박한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고객을 붙잡고 늘리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은행들이 직원들에게 할당량까지 정해주며 실적을 옥죄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직접 뛰어야 하는 직원들의 피로감도 상당해졌다고 한다. 일부 은행원들은 통합멤버십 영업을 '멤벌이(멤버스+앵벌이)'라고 지칭하며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 그래도 영업 전쟁이 주택가 학생들까지로 번졌다는 사실은 도무지 개운치 않았다. 일단 현장을 봐야겠다는 싶어 급히 뛰어갔다.
카페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주스 쿠폰 받아가세요'란 팻말을 들은 은행 직원이 "***앱 깔고 추천번호 넣으면 주스 쿠폰 드립니다"라며 말을 걸어왔다. 또 다른 2명의 은행원은 여고생들의 앱 설치를 도와주고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관련 앱을 검색하면서 "미성년자 대상의 영업은 불법 아니냐"고 넌지시 건넸더니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은행 거래 프로그램이라 괜찮다'라면서도 여고생들과 상담했던 2명의 은행원들이 쇼핑백과 팻말을 챙겨 카페 앞을 서둘러 떠났다. 혹시라도 과잉 마케팅이라며 신고할까 걱정돼서였을까.
은행들이 마케팅으로 고객을 늘렸더라도 이들이 실제 금융상품을 애용하지 않는다면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직 경제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은 학생이라면 더 그렇다. 되레 손품이 더 들어야 할 소액계좌, 깡통계좌로 남아 경영이 부담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무리한 영업이 자칫 불완전판매를 일으켜 독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2007년 은행권에 '묻지마 펀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펀드 영업 광풍이 불었던 그 당시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또 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
이은정 금융부 차장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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