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리를 찾아서'와 '말아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화 '도리를 찾아서'에서 캘리포니아 해안의 바다생물연구소는 안내방송을 한다. "저희는 아픈 해양생물을 치료해 방생하고 있습니다." 배우 겸 환경운동가 시고니 위버(67)의 목소리다. 2006년 10월 유엔총회 개막을 앞두고 저인망어업에 따른 바다 생태계 문제를 지적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안내방송과 달리 해양생물들은 클리블랜드의 수족관으로 간다. 해양생물들은 어디로 떠나는지 관심이 없다. 인간의 손을 거치면서 자생력을 잃었다. 방생된 듯한 바다사자 플루크와 러더 등도 바다생물연구소 주위를 계속 맴돈다.
블루탱 도리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다. 경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어느 시기의 일을 드문드문 기억하는 건망증이다. 하지만 그는 용감하다. 낙천적인 성격에 실행력을 겸비했다. 도리를 찾아서는 그가 가족의 존재를 떠올리고 부모를 찾아 나서는 내용을 그린다. 도리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대양을 건넌다. 여러 고초를 겪는데, 가장 큰 난관은 장애에 대한 편견이다. 거의 모든 동물들이 도와달라는 요청을 외면한다. 간혹 관심을 보이더라도 그를 불쌍하게 여기고 만다.
냉랭한 바다는 우리 사회와 닮았다.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개인의 직접적인 이해와 부딪히면 마음속 깊이 자리한 편견이 여전히 작동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위한 자립 기반도 부실하다. 올해 정부의 장애인 관련 예산에서 저상버스 등은 전액 삭감됐다. 중증장애인 활동지원과 여성장애인교육 관련 예산은 반영조차 안 됐다. 기업이 일정 비율 이상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장애인고용의무제도도 법제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별다른 개선 없이 도리의 자생력을 요구하고 있다.
정윤철 감독(45)의 영화 '말아톤(2005년)'은 이런 사회에서 자폐증 소년이 성인으로 커가는 내용을 담았다. 경숙(김미숙)은 아들 초원(조승우)을 강하게 키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차분하게 설명하다가 알아듣지 못하자 우산을 내던진다. "따라해. 비가 주룩주룩 내려요. 어서 말해. 너 왜 말 못해. 벙어리 아니잖아." 그는 초코파이를 보여주며 초원을 걷게 한다. 아들이 마라톤을 좋아한다고 확신한 뒤에는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마라톤 코치 정욱(이기영)의 교육은 경숙과 다르다. 처음에는 자폐증에 편견을 보이지만 계속 교류하면서 초원을 비장애 선수처럼 대한다.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고, 초원이 좋아하는 말을 보여주려고 경마장에 간다. 경숙과 정욱은 충돌한다.
"그것도 훈련이었어요?""애한테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게 자식사랑인가.""내 아들이야. 내 아들은 내가 알아서 가르쳐.""그러니까 애가 엄마 허락 없이 오줌도 제대로 못 누지. 자기가 낳았다고 다 자기 건가.""길러보지도 않았으면서."
초원은 두 교육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이내 마라톤에 애착을 보인다. 엄마 몰래 춘천마라톤에 참가한다. 출발선상에서 뜯어말리는 경숙에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묻는다. "초원이 다리는?""백만 불짜리 다리." 엄마의 손을 놓은 초원은 선수들 속으로 사라진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도리의 자생력도 스스로 길러지지 않았다. 부모인 제니와 찰리의 정성 어린 교육이 뒷받침됐다. 강제성은 없다. 도리가 언제나 집을 찾을 수 있도록 그가 좋아하는 돌을 여기저기에 깔아 놓는다. 여러 차례에 걸쳐 돌아오는 방법을 설명한다.
서로 다른 교육을 받았지만 초원과 도리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개 밝은 표정을 유지한다. 힘들고 짜증나는 일에 부딪혀도 긍정적으로 표현하며 애써 결점을 감춘다. 약점은 극한 상황을 마주하면 그대로 드러난다. 제니와 찰리는 도리에게 두 문장을 외우게 한다. "도와주세요. 저는 단기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어요." 초원이도 외친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그들은 이 말을 얼마나 소리 내어 외쳤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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