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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통렬한 자살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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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통렬한 자살골들 소설가 김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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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동서냉전의 한 축이었던 구 소비에트 공화국이 해체되었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소비에트 내에 있던 우크라이나 등 여러 국가들이 줄줄이 독립을 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세계지도가 만들어졌다. 소련이 그렇게 해체된 것은 물론 외부의 힘이나 침략 때문이 아니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붉은 군대’는 여전히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고, 미국과 함께 전 세계를 덮고도 남을 핵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소련이 해체된 결정적 한 방은 바로 보리스 옐친이라는 사내로부터 나왔다. 고르바쵸프에 의해 무르익어 가던 개혁개방 정책에 그는 독립 러시아공화국이라는 깃발을 들고 결정적 슛을 날렸던 것이다. 구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히 ‘자살골’이었다. 그것으로 강력한 철의 장막은 무너졌고, 2차대전 후 반세기를 끌어온 동서냉전도 막을 내렸다. 소련 대신 여러 작은 나라들이 등장하였고, 미국과 맞서는 세계 패권도 중국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영현 칼럼] 통렬한 자살골들



지금 세계는 영국의 EU 탈퇴로 난리법석이다. 주식은 출렁이고, 나라들마다 자기들에게 닥쳐올 미구의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불안한 눈빛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자는 아직 일찍이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거대한 쓰나미가 오고 있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하고, 혹자는 괜찮을 거라고 도닥이기도 한다. 아무튼 26년 전 소련의 해체에 버금가는 충격으로 지금 세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구 소비에트 못지 않게 거대한 동맹체였던 EU가 이렇게 난리법석이 된 것 또한 외부의 침략이나 힘 때문은 아니다. 이것 역시 후세의 역사가들은 자살골로 명명할 것이 분명한데 여기엔 그 결정적 한 방을 먹인 자가 한 사람의 옐친이 아닌, ‘자기가 무슨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영국의 무지한 백성들이었다고 한다. 표 분석을 보면 늙고, 못 살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대체로 EU탈퇴를 찬성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 세계는 그들 무지한 영국인 일부(?) 층에 격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에는 간지(奸智)라는 것이 있다. 짧은 눈으로 보자면 재앙이지만 긴 눈으로 보자면 인류가 발전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거대 공화국 소련이라는 사회주의적 질서도, 서구 열강의 정치적 경제적 블록인 EU라는 자본주의적인 질서도 결코 영구적인 질서는 아니다. 아니, 영구적인 질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질서의 내부가 병들기 시작하면 질서는 반드시 그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마련이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국경을 넘어 세계화를 외치는 질서 속에는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져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이 자리잡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나 가난뱅이는 넘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실업자 젊은이들은 남아넘친다. 골칫거리인 IS에 합류하기 위한 긴 행렬 속에는 그들이 있다. 반대로, 불과 225명의 세계 대부호의 총자산은 1조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전세계 가난한 자들의 47%, 약 25억명의 연간 수입과 맞먹는다. 빌 게이츠의 재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명의 총자산과 맞먹으며, 세계100대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은 각각 가난한 나라 120개국의 수출 총액보다 많다. (출처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런 질서를 계속 유지하라구? 그냥 그렇게 살라구? 당신이라면......?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물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곧바로 행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대혼란이 뒤따를지 모른다. 어쩌면 앞의 질서가 훨씬 더 나았노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모세가 노예상태의 히브리인들을 끌고 나오자 곧 그들 사이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왔던 것처럼... 부르봉 왕조의 지긋지긋한 봉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 다음에 찾아온 것도 질서가 아니라 대혼란이었다. 세계는 그렇게 혼란을 거쳐 새로운 질서로 나아간다. 인류는 결코 어리석은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번 연말 거대 미국에서 또 한번 통렬한 자살골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역사의 간지가 어떻게 작동할지 궁금해진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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