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사회, 희망으로 극복하자 ②국회…"국민, 정치효능감 경험하지 못해 불신 가중"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회의 한 종류로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데 날로 먹는 이것은 무엇인가." 지난 3월 방송된 TV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사회자(개그맨)가 낸 '퀴즈'에 다른 개그맨의 독특한(?) 답변이 이어졌다. "날로 먹는 회? 국회!" 현장에 있던 방청객들은 웃음보가 '빵' 터졌다. 가슴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개그'로 받아들인 셈이다.
TV 개그 프로그램은 물론 교양, 시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정치인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특히 국회의원은 매일 싸움이나 하는 이익집단으로 그려진다. 방송에 비친 이러한 이미지는 일반인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주요기관 신뢰도는 법원(35.0%), 검찰(34.3%), 중앙정부부처(31.9%), 국회(15.3%) 순으로 조사됐다. 국회는 압도적인 꼴찌를 차지했다. 청렴성 인식조사는 더 처참하다. 국회가 청렴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0.6%에 불과했다.
"정치인이 그러면 그렇지." "나는 관심 없어. 맨날 싸움질만 하는데." 정치 관련 대화가 오갈 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냉소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밝히면 정치편향 부담을 떠안을 수 있기에 '모두 까기' 화법(話法)을 선호하는 탓이다.
정부기관이나 국회, 정치인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은 한국사회에 부담을 안겨주는 위험신호다. 지난 2월 서울대에서 열린 '2016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논문은 그런 점에서 곱씹어 볼만하다.
백 교수는 '정부신뢰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와 시사점'이라는 논문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 검찰, 경찰, 법원, 국세청, 군(軍) 등 7대 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군 신뢰도는 49.1점, 대통령 신뢰도는 48.1점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39.7점, 국회는 28.9점에 불과했다.
백 교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크면 정책에 대한 국민의 수용도가 높아 공공정책의 성공 가능성이 커지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돼 투자와 소비 등 내수가 진작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물론 국회도 신뢰받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유다. 정부 정책은 국회를 통해 검증받고, 실행된다. 국회가 지난해 12월3일 통과시킨 2016년 정부 예산은 386조3997억원에 이른다. 국민 세금 등을 토대로 형성된 엄청난 정부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지 심사하고 확정하는 주체가 바로 국회다.
그동안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정치 냉소주의를 갖게 한 것은 국회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한때 국회는 '폭력'의 경연장이었다. 쟁점법안 처리 과정에서 몸싸움이 빈번했고, 본회의장은 '완력' 대 '완력'이 충돌하는 공간이었다. 연말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낯뜨거운 모습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국회가 실망 가득한 모습을 보이면 국민의 정치혐오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주요 선거에서 저조한 투표율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최근 10년간 전국단위 선거를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저조한 투표율은 2008년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인 46.1%다. 당시 부산광역시 42.9%, 인천광역시 42.5%, 광주광역시 42.4% 등 대도시 투표율이 특히 낮았다.
저조한 투표율은 국민 분노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씁쓸하다. 투표율이 낮으면 정치 혐오를 이끌었던 '불량 정치인'들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간다.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여길수록 유권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들의 한심한 정치행위가 부각되고 이것이 다시 혐오를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신뢰와 관심 속에 정치시스템이 운영될 때 정부 정책과 예산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실현되기 마련이다. 냉소와 무관심 속에 적절한 견제장치마저 흔들리고 만다면 정치는 소수의 권력자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국회의원 중에서도 밤낮으로 민심 청취에 힘을 쏟고, 분초를 아끼며 의정활동에 매진하는 양질의 정치인들이 없지는 않다. 그들은 정치인 전반을 향한 냉소적 시선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정치불신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몫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를 통해 삶이 좋아진다는 '정치 효능감'을 국민이 경험하지 못하면서 불신이 가중됐다"며 "정치인이 공약(公約)을 지키는 게 해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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