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는 보이지 않는다. 해운업황 악화가 2009년 이후 8년째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부실을 키워온 주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해운업 불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8년째 이어져왔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 경기침체가 가속화됨에 따라 2009년 전세계 해상 물동량은 전년대비 4.5% 떨어졌다. 전례없는 낙폭이었다. 이후 전세계 해상 물동량과 운임은 긴 하락세를 그려왔고, 해운산업 전체가 생존 시험대에 올랐다.
2008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던 양대 해운는 2009년 1조5079억원의 적자를 냈고 그렇게 8년을 버티며 부채는 쌓여갔다. 양대 해운사의 부채는 지난 1분기 말 기준 11조2679억원까지 불어났다.
해수부는 2009년 이같은 해운업계 문제점을 인지했지만 비전없는 공염불로 부실을 키워왔다.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분리됐다 박근혜 정부 때 부활한 해수부는 이후 윤진숙, 이주영, 유기준, 김영석 장관까지 4년간 총 4번차례에 걸쳐 장관이 바뀌는 동안 해운사의 불황도 깊어졌고 이 기간 93곳의 중소형 해운사가 사라졌다.
정부측의 지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09년 캠코는 자금난을 겪고 있던 해운사들로부터 배를 매입하거나 약 2조원 규모의 선박펀드로 건조한 신조선을 용선해줬다. 하지만 용선료가 시중금리보다 비싼 금리로 책정되면서 해운사들로부터 외면받았다. 2011년 신속인수제 도입으로 만기도래 회사채 원금 중 일부를 만기 연장해주며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는 모면했지만 발행금리가 연 10%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받아가면서 채무 부담을 키웠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모면이 아니라 기초체력을 강화할 수 있는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적기에 내놨더라면 부실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8년간 외면받던 해운업계 위기는 유일호 장관이 총대를 메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에 구조조정과 관련해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고 언급했고 해운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탔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해운사 한 곳을 읍참마속(泣斬馬謖) 할 것이라는 발언을 공식적으로 내놓으며 압박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사들이 지난 8년간 고전할 때 주무부처로서 문제제기도 보호역할도 외면해오더니 뒤늦게 법정관리를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라고 씁쓸해했다.
해외 해운사들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 중국 정부는 2008년부터 자국 선사 코스코에 108억달러 신용조달을 지원했고, 일본 정부도 2011년부터 자국 해운사들이 이자율 1%의 초저금리로 10년 만기 회사채 발생할 수 있도록 지원을 펼치는 등 선제적으로 나섰다.
독일정부는 자국 선사 하팍로이드에 18억달러 규모 지급보증을 서줬고, 함부르크시는 7억5000만유로 현금지원을 펼치는 등 정부와 지자체에서 해운사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돈을 쏟아부었다. 글로벌 해운사는 물론이고 규모가 작은 중소형 해운사 마저도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동안 우리 해운사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결국 한국 해운은 선복량 기준 2010년부터 글로벌 5위에서 지난해 6위로 추락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비록 민간기업이지만 전세계 100여개국 항로를 확보하고 운송을 맡으며 무역의존도가 95%에 달하는 우리나라 산업에 토대를 닦아왔다"면서 "연관산업과의 경쟁력 등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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