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2017년 대선 구도가 그라운드 제로(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되게 됐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 대다수가 대권가도에서 치명상을 안고 있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불확실한 대선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총선 후폭풍으로 정치권이 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대선후보로서 탄탄한 지위를 유지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마저 총선 과정에서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에 휘말렸다. 안 의원은 1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당 의원과 당직자가 선관위에 의해 고발된 데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국민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은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 한 사람이 아닌 박선숙 의원(전 사무총장)과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을 겨냥하고 있다. 여야 대권주자의 부침 와중에도 부동의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했던 안 상임공동대표로서는 이같은 상황 자체가 치명상이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했던 안 상임공동대표가 국민들이 기존 정치에 있어 가장 환멸을 느껴왔던 '불법정치자금' 논란의 간접 책임을 지게 됐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달 28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책임론에 묶여 있다. 지난해 8월 강남역에서 발생한 사건과 같은 사건이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 발생함에 따라 박 시장 역시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박 시장의 우군을 찾기 어렵다. 새누리당은 물론 친정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 역시 외로운 처지에 있다. 앞서 총선 당시 문 전 대표는 광주에서 "진정 호남이 원한다면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문 전 대표가 배수진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더민주는 호남에서 전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거뒀다. 호남이 더민주에 가지는 상징성과 문 전 대표 자신의 약속 때문에 문 전 대표는 야권 대선주자 1위임에도 불구하고 19대 대선에 나설 수 있을지는 물음표가 달려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여론조사상으로는 여당의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지만 야당 후보들에 비해 한참 못미치는 상태다. 한때 야당 잠룡들과 호각을 이뤘던 이들이 이처럼 열세에 몰린 것은 총선 패배 탓이다. 김 대표는 한때 180석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실제 의석은 122석에 그쳤다. 오 전 시장의 경우에도 전국적 관심을 모았던 서울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패했다.
한편 반기문 유엔(UN)사무총장의 대선행보도 윤리적 직업관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상황이다. 그는 9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수행하면서 (다른 곳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며 "사무총장으로서의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재임기간 중 맡인 바 업무를 충실히 하겠다는 '당연한 말'을 밝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반 총장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반 총장이 국내 방문에서 대선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쏟아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남은 재임기간 동안 논란이 될 전망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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